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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유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6호 18면


“아니, 돈 많이 들여서 검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구요?”


종합검진 결과 상담을 할 때 가끔 듣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뭔가 불편한 증상이 있는데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위 패키지 검사라고 하는 고가 종합검진의 맹점이다.


패키지형 종합검진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개별화되어도 의사의 진료와는 큰 차이가 있다. 건강상의 문제가 있거나 어딘가에 불편한 곳이 있는 사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훑어 내리는 듯한 비싼 종합검진 패키지 검사가 아닌 해당부분에 대한 진료를 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라더라”고 하는 지엽적인 의학 상식은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간혹 “어지러운데 빈혈검사 좀 해주세요” “잘 붓고 피곤한데 콩팥이랑 간검사 좀 해 주세요” 라는 환자들에서 최종적으로는 어지럼증의 원인이 귀에서 온 것이거나, 잘 붓고 피곤한 것이 갑상선 때문인 것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판단 하에 머리 CT나 MRI가 포함된 종합검진 패키지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이런 경우는 패키지 검진이 아니라 두통과 어지럼증에 대한 의사의 진료를 봐야 한다. 진료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종합검진 패키지 검사를 하게 되니 “비싼 돈 들여서 이유를 못 찾다니 허탈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기검진의 목적은 건강에 위협이 될 만한 요인들이나 질병을 미리 발견해서 더 건강하게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암을 포함한 많은 만성질병들은 초기에는 전혀 증상이 없이 조용히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지 않으면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검사의 항목이 매우 적고 형식적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갖기도 하는데, 정기검진 항목은 그 나라에서 해당 연령대에 흔한 질병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선정된 항목이니 당연히 기본으로 챙겨서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신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검사를 더 해야 할 지 등은 평소 내 건강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와 상의를 하면 된다. 소위 명의라고 알려진 유명한 의사는 특정분야의 질병을 치료하는 명의다. 나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아는 주치의는 긴 대기자 명단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명의에서 찾을 필요가 없이 내가 사는 동네나 직장 가까운 곳에서 찾으면 된다.


이번 명절에는 가족들끼리 정기검진은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건강을 챙겨보자. 너무 건강해서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병원 문턱 한 번도 안 넘어 봤다는 어르신들한테 보이지 않는 질병이 다수 발견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노인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요즘, 자신을 잘 아는 동네의사는 몸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에 더해서 노년기의 힘든 마음을 치유해주는 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올해는 자식보다 더 살가운 친한 단골의사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박경희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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