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트럼프 ‘충격과 공포’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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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경 경비대원이 지난 17일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차량이 지나갈 수 있게 펜스를 열고 있다. 이곳에선 멕시코인들의 불법 밀입국과 마약 밀반입이 성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미국의 국경 경비대원이 지난 17일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차량이 지나갈 수 있게 펜스를 열고 있다. 이곳에선 멕시코인들의 불법 밀입국과 마약 밀반입이 성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다. 국경세 도입 또한 이제 시간문제로 봐야 한다. 관련국들이 그의 전광석화 같은 행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 재계에 “해외서 만들면 국경세 부과” 연일 경고
TPP 탈퇴 이어 이번엔 멕시코 국경장벽 … 세계 경악
미 신뢰 추락 땐 결국 중·러 이익, 신냉전 올 수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날 국토안보부를 방문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고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는 일련의 행정명령에 서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도 24일 저녁 트위터에 “내일은 국가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날(Big day)”이라며 “무엇보다도 우리는 장벽을 세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국경장벽 건설에 최소 100억 달러(약 12조원)의 자금이 들어갈 전망이지만 어떤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내비쳤다. 이 발언에 멕시코 페소화는 이날 2% 하락한 달러당 21.95페소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미국 빅3 자동차 CEO인 메리 바라(GM), 세르조 마르키온네(피아트크라이슬러), 마크 필즈(포드?왼쪽부터)가 24일 트럼프와 회담 뒤 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빅3 자동차 CEO인 메리 바라(GM), 세르조 마르키온네(피아트크라이슬러), 마크 필즈(포드·왼쪽부터)가 24일 트럼프와 회담 뒤 회견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선언에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그의 행보는 대화 상대가 필요 없고 앞뒤 재지 않는 ‘마이 웨이(My Way)’다. 특히 이날 버락 오바마 정부가 환경오염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던 대형 송유관 사업을 재개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모습에서 ‘환경보다는 경제적 이익이 우선’이라는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날 “미국 내 송유관에 미국산 철강을 사서 써야 한다”는 지시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가 과거 부동산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파산제도까지 활용하거나 충격과 공포를 던지며 상대방을 압박했던 승부사 기질을 다시 보는 듯했다.

트럼프가 전가의 보도로 만지작거리는 또 다른 승부수가 국경세 도입이다. 미 언론은 지난 1주일간 트럼프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국경세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재계인사를 이틀 연속 만나면서 해외에서 만들어 수입해 오면 막대한 국경세를 부과하겠다는 경고를 재차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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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없어 전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국경세를 도입하면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경세에 찬성하는 하버드대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달러 강세로 인한 무역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영향을 국경세 부과로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역상대국들이 미국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이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소돼 결과적으로 전 세계 교역을 움츠러들게 하고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87년 전 ‘대공황의 악몽’을 되살릴 수 있다. 미국은 1930년 7월 무려 2만1000여 개의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기존 관세율을 높이는 ‘스무트-홀리(Smoot-Hawley)법’을 도입했다. 스무트-홀리법의 평균 관세율은 60%로 미국 역사상 최고였다. 세계는 경악했다. 당시는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이 경제 침체기로 접어드는 국면이어서 충격은 더했다. 이에 많은 나라가 미국의 고관세에 맞서 줄줄이 관세를 올렸고 전 세계 무역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전 세계 무역액은 4년 만에 3분의 1 토막이 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이 그간 쌓아 온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러시아와 중국에 승리를 안겨 줘 결국 신냉전 양상을 빚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서울=이소아 기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