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 20년 만에 20년형 확정 … “아들 중필이 한 풀었다” 엄마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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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서 존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된 25일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재판이 끝난 뒤 대법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서 존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된 25일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재판이 끝난 뒤 대법원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어머니 이복수(75)씨는 25일 살인범 아서 존 패터슨(38)에게 징역 20년이 확정되자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법원 재판정에서는 담담한 표정이었던 이씨는 법정을 나와서야 눈물을 보였다. “하늘에 있는 중필이가 한을 풀었다”고 말하면서다. 아들이 숨질 당시 50대였던 어머니는 70대가 돼서야 이 말을 할 수 있었다.

대법 “패터슨이 살해 충분히 증명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20년간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살인사건에 마침표가 찍혔다.

조씨는 1997년 4월 3일 여자친구와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흉기로 목과 가슴을 찔려 사망했다. 당시 뒤이어 화장실에 들어갔던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당시 18세)와 그의 동갑 친구인 패터슨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한국 검찰은 “조씨를 제압할 정도로 체구가 큰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높다”며 리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패터슨에겐 흉기를 버린 혐의(증거 인멸) 등이 적용됐다. 같은 해 10월 1심에서 리는 무기징역을, 패터슨은 장기 1년6월에 단기 1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까지 리가 살인범으로 인정됐던 사건은 대법원이 리에 대해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파기환송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98년 9월 리는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사이 패터슨은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같은 해 11월 유족이 곧바로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해 재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듬해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정지 연장을 놓친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했다.

피해자 조씨가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다 찍었다. 그는 어머니와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사진 이복수씨]

피해자 조씨가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다 찍었다. 그는 어머니와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사진 이복수씨]

억울한 죽음이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건 10여 년 뒤였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한 2009년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 요구가 이어지자 법무부는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2011년 패터슨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체포되자 한국 검찰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로부터 4년 뒤 한국으로 송환된 패터슨은 1·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대법원은 “살해 혐의가 충분히 증명됐다고 본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딸 셋을 낳은 뒤 얻은 막내아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어머니 이씨는 “20여 년 전 무죄 판결이 났을 때 눈앞이 캄캄해졌던 기억이 난다. 아들이 이번 생에선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죽었지만 다음 생엔 우리처럼 어려운 일을 겪는 이들을 돕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