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28년 만의 건보 개편, 골든타임 잡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종훈 사회1부 기자

정종훈
사회1부 기자

“정부안은 비록 차선책이지만 한 명이라도 혜택을 더 볼 수 있게 한 발이라도 떼야 합니다.”

그제 열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공청회에 참석한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이 내세운 현실론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4년간 끌어온 건보료 개편안을 공개했다. 1989년 국민 건강보험 시행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건보료 체계에 손을 댄 것이다. 3년씩 3단계로 지역가입자의 성·연령 등에 매기는 ‘평가소득’을 없애는 대신 최저보험료를 도입하고, 피부양자와 부업 직장인에게 적용하는 보험료 기준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매기는 글로벌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과거보다 진전된 방안이란 평가가 많다. 이창준 복지부 보험정책과장도 언론 설명회에서 “여러 고민 끝에 단계적인 개편안이 현실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런 개편안을 내놓은 건 그동안 누적된 문제점이 한계에 달해서다. 지역·직장 가입자의 형평성이 어긋나고 고소득·재산을 가진 피부양자가 ‘무임승차’하면서 건보 가입자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졌다. 흉기를 들고 건보공단 지사를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까지 심심찮게 나타났다. 보험료 5만원에 생계가 흔들린 ‘송파 세 모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개편 속도를 올리고 재산·자동차에 매기는 보험료도 더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공청회에서 정부의 건보 개편안이 공개됐다. [뉴시스]

23일 국회에서 열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공청회에서 정부의 건보 개편안이 공개됐다. [뉴시스]

하지만 개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 공청회에 참석한 윤소하 정의당 의원도 “정부안이 미흡하지만 첫 삽을 떴기 때문에 10%만 떨떠름하고 90%는 기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야권은 지난해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를 매기는 개편안을 먼저 내놨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과는 차이가 난다.

남은 숙제는 언제 어떻게 차이를 줄여서 하나로 결정하느냐다. 무엇보다 관련법 개정의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전문가들이 보는 골든타임은 2월에 열릴 임시국회다. 자칫 이 시기를 놓치면 대통령 탄핵심판과 맞물려 조기 대선정국의 쓰나미에 휩쓸릴 수도 있다. 표를 가진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반영한 정당과 후보들의 포퓰리즘적 공약까지 겹치면 개편안이 어찌 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2년 전 이 무렵의 연말정산 파동 때 여론 눈치를 보다 개편안 발표까지 놓친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행히 정치권에서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정치권과 정부 모두 다른 정치적 고려는 제쳐 두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2월 건보 개편안 통과에 매진해야 한다. 모처럼 제 할 일 하는 정부와 국회를 보고 싶다.

정종훈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