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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국제학교 성적표를 들춰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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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교 졸업생 대입 실적 완벽 분석

한 국제학교의 5년 전 교실풍경. 이때만 해도 국제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5년. 지난해 송도 채드윅과 제주 KIS가 첫 졸업생을 배출하며 대구국제학교·NLCS·BHA까지 5개 국제학교 모두가 대학 진학 실적을 냈다. 영미권은 물론 한국 명문대까지 다수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초기의 우려와 불안을 딛고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제학교 5곳 지난해 졸업생 대입 성적

NLCS 57명 중 37명, 채드윅 68명 중 43명 세계 100위권대 합격

채드윅은 미국, NLCS는 영국 대학 강세
학부모 “첫 졸업생 보니 불안 사라져”
케임브리지·UCLA 등 명문대 많이 가

발표·토론 등 암기식 아니라 만족?
학원 뺑뺑이 없다지만 SAT 사교육도
아이비리그보다 서울대 가기 힘들어

내국인 입학이 가능한 국제학교가 들어선지 7년이 흘렀다. 2010년 대구국제학교와 송도 채드윅에 이어 2011년 제주에 노스런던컬리지에이트스쿨(NLCS)·브랭섬홀아시아(BHA)·한국국제학교(KIS)가 잇따라 개교했다. 그리고 지난해 처음으로 5개 국제학교 모두 대입 진학 실적이 나왔다. 지난해 6월 졸업생 기준으로 NLCS는 3기, BHA 2기, 채드윅·KIS는 첫 졸업생이다. 미국 아이비리그와 영국 옥스브리지(옥스포드+케임브리지) 등 영미권 명문대는 물론 국내 명문대에도 합격생을 배출했다.

입지 다진 국제학교

조나영(47)씨는 서울의 한 외고에 다니던 아이를 KIS에 전학시키면서 2015년 9월 제주로 이사했다. 남편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조씨는 아이와 함께 생활한다. 조씨는 “해외 대학을 목표하고 외고를 보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국내 명문대 진학 중심으로만 운영됐다”고 말했다. 외고 규제 강화에다 유학 수요 감소로 외국 대학 진학 준비를 하던 국제반이 사라지면서 ‘외고=외국 명문대’ 공식이 깨진 게 전학의 이유라는 설명이다. 그는 “매일 새벽 2시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다니느라 파김치가 돼 들어오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며 “좀더 자유롭고 즐겁게 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제주에 온지 1년 4개월. 조씨는 “아이가 아침마다 웃는 얼굴로 등교한다”며 “더 일찍 오지 못한 걸 후회한다”고 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지난해 6월 KIS의 첫 졸업생 배출을 계기로 더 확고해졌다. 지난해 KIS 졸업생 52명의 국내외 대학 중복합격 건수는 총 165건이었는데. 이 중 30.9%(51건)가 뉴욕대·코넬대·존스홉킨스대 등 ‘2016 US뉴스&월드 리포트’ 선정 미국 50위 내 대학이었다. 류재명 KIS 대학진학카운슬러는 “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이화여대 등 국내 상위권 대학에도 각 1명씩 합격시켜 졸업생 전원이 진학했다”고 밝혔다. KIS 11학년 자녀를 둔 김현주(49)씨는 “첫 졸업생 진학 실적이 나온 뒤 학부모들 사이의 불안감이 거의 사라졌다”며 “더 좋은 학교를 만들자고 학부모끼리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KIS뿐 아니라 채드윅·NLCS·BHA·대구국제학교 등 다른 4개 국제학교도 비슷하다. NLCS는 지난해 6월 졸업생 중 64.9%(57명 중 37명)가 ‘2016 QS 세계대학 평가’ 기준 세계 100위권 내 대학에 최종 진학했다. 케임브리지(3명)·옥스포드(1명)·임페리얼(4명) 등 영국 명문대와 뉴욕(2명)·UCLA(2명)·카네기멜론(1명) 등 미국 최상위권 대학이 포함됐다.

이혜영 채드윅 홍보이사는 “채드윅 첫 졸업생 68명 중 50명이 세계 100위권 내 대학에 지원했고, 이 중 86%(43명)가 한 곳 이상의 대학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채드윅 9학년 자녀를 둔 김모(47·송도)씨는 “발표·토론·프로젝트 수업과 음악·미술·체육을 균형 있게 가르치는 영미식 교육을 원해 국제학교에 보냈지만 진학 실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제는 믿고 맡긴다”고 했다. 국제학교 전문 컨설팅을 하는 안윤정 에듀프로아카데미 원장은 “NLCS·BHA에 이어 채드윅·KIS도 좋은 대입 실적을 보이자 국제학교를 믿어도 되겠다는 학부모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학교별 진학 특징 확연히 달라

국제학교의 진학 실적은 교육과정의 우수함에 기인한다. 5개 국제학교 중 채드윅·NLCS·BHA 3곳이 우수 교육 프로그램을 갖춰야만 인증받을 수 있는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채드윅과 BHA는 초중고 전 학년에서, NLCS는 12~13학년 과정에서 IB 교육을 하고 있다. IB 프로그램은 1968년 만들어진 국제공인 교육과정으로 전 세계 150여 개 국가 4000여 개 학교가 채택하고 있다. IB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국제 학력 인증 기관 국제학위협회(IBO)의 인증을 우선 받아야 한다. 유학전문업체 세쿼이아그룹 박영희 대표는 “IB는 교육시설·교사진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인증받기가 까다롭다”며 “IB 인증 자체가 학교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진학 실적이 엇비슷하게 좋더라도 학교별로 강세를 보인 대학은 달랐다. 이 역시 교육과정의 차이 때문이다. KIS는 미국계 국제학교로 미국 고교에서 많이 진행되는 AP(대학 선이수제) 학제를 운영한다. 미국 학제의 특징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 과목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KIS는 고교 과정인 9~12학년에서 AP 과목을 포함해 역사·정치·경제·심리학·물리·화학·아트·디자인 등 43개의 선택 과목을 운영한다. 김광우 KIS 대외협력이사는 “올 8월부터는 2년 동안 관심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AP캡스톤 과정도 운영할 계획”이라며 “KIS는 미국 대학 진학에 특화한 학교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의 설명대로 KIS 첫 졸업생 진학 결과는 미국 대학에 집중돼있다. 중복합격 165건 중 86%(142건)가 미국 대학이다.

채드윅도 미국계 국제학교로, 미국 대학 합격 비중이 높다. 현재 채드윅은 초중고 전 학년에 IB 과정을 운영하지만 지난해 첫 졸업생은 AP 과정으로 졸업했다. 채드윅 1기 졸업생 68명의 중복합격 275건 중 83.6%(230건)가 미국 대학이다. 이혜영 이사는 “올해 졸업생부터는 IB 교육과정을 밟고 졸업한다”며 “영국 케임브리지·옥스포드 등 영국대학 합격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영국계 학교인 NLCS는 영국 대학 합격 비중이 높다. 지난해 NLCS 졸업생 57명의 중복합격 건수 343건 중 영국 대학이 47.2%(162건)로 가장 많았고 미국 대학은 40.5%(139건)로 두 번째였다. 그 다음은 홍콩 대학(9.3%, 32건)이었다. 캐나다계 학교인 BHA는 미국→영국→캐나다 순으로 높았다. 캐나다 대학 합격 비중은 BHA가 가장 높다. BHA 2기 졸업생이 합격한 대학 수는 총 90개 대학인데, 이 중 캐나다 대학 비중이 8.9%(8개)였다.

각 국제학교별로 강세를 보이는 해외대학의 특징이 뚜렷해지면서 학부모·학생들은 목표 대학을 고려해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분위기다. NLCS에 13학년 자녀를 둔 강정화(49)씨는 “미국·영국 양쪽을 모두 생각중이어서 두루두루 강점을 가진 NLCS를 선택했다”며 “미국대학을 목표하는 학생들은 KIS를 많이 간다”고 했다.

국내 대학 노린다면 입학 신중해야

국제학교가 학부모 관심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해외 대학뿐 아니라 국내 대학도 노려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5개 국제학교는 모두 국어·한국사를 가르치기에 졸업생은 한국 학력을 인정받는다. NLCS에 10학년 자녀를 둔 윤선경(51)씨는 “해외 대학뿐 아니라 한국 대학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나 같은 부모가 10%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각 국제학교별로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8명까지 SKY명문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진학 실적을 냈다.

하지만 한국 대학 진학이 쉽지는 않다. KIS 11학년 나태웅군은 “국제학교는 모든 수업이 발표·토론·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고학년에 올라가면 매일 과제에만 3~4시간씩 쏟아야 할 정도로 학업량이 많다”며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수능을 함께 준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백성현 NLCS 대학진학카운슬러는 “국제학교 학생이 한국 대학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수능 성적이 필요없는 학생부 종합전형과 국제 특기자 전형 딱 두 가지뿐”이라며 “일부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 대학이 AP나 IB 등 해외 학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선발 과정 자체가 국내 학생 중심이기 때문에 국제학교 학생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이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 대학은 지원폭이 좁을뿐 아니라 합격 가능 점수도 상당히 높다. 류재명 KIS 대학진학카운슬러는 “한국 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려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할 정도의 스펙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백 카운슬러도 “보통 IB 디플로마 성적 35점 이상(45점 만점)을 QS 세계대학 평가 100위권 내 지원 가능선으로 보는데. 한국 상위권 대학은 40점은 돼야 합격을 점쳐볼 수 있다”며 “서울대는 미국 아이비리그나 영국 옥스브리지 지원 가능선인 43점은 돼야 도전해볼만하다”고 했다. 국제학교 학생 사이에선 “서울대보다 미국 아이비리그 합격이 차라리 쉽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이 때문에 국제학교를 다니다 중학교 3학년 쯤 한국 학교로 전학가는 사례가 종종 있다. 채드윅 11학년 자녀를 둔 김모(47·서울 대치동)씨는 “뒤늦게 의대 등 한국 최상위권 학과를 목표하면서 국제학교에서 한국 학교로 전학가 다시 한국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한국 대학을 크게 생각한다면 국제학교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인 비율 낮은 건 한계

정부가 귀족학교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국인 입학이 가능한 국제학교 설립을 용인한 데는 해외 조기유학 흡수 목적이 컸다. 외화 유출을 줄이고 국내에서도 수준 높은 영미권 교육을 제공해 교육 수요자인 학생·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7년이 지난 지금 국제학교가 목표했던 조기 유학 흡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2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제주 지역 국제학교인 NLCS·BHA·KIS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 6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5%가 ‘국제학교가 없었으면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냈을 것’이라고 답했다. JDC는 해외 조기유학 비용이 1인 당 연간 약 70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11년 제주에 3개 국제학교가 개교한 후 5년 간 82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면서 누적 외화 절감액이 258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대원국제중을 다니다 지난해 NLCS 9학년으로 편입한 신상정군은 “국제중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 밤 9시까지 야간자율학습에 매일 학원 뺑뺑이로 숨이 턱턱 막혔었다”며 “이곳에 온 후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미술을 마음껏 할 수 있어 학교를 정말 즐겁게 다니고 있다”고 좋아했다.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인 김유나양은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왜 그렇게 생각하니’‘네 생각은 어떻니’”라며 “한국 학교에 다닐 때는 암기하고 시험 친뒤 금세 까먹기 일쑤였는데 여기서는 하나하나 실험하고 증명하면서 정말 공부가 이런거구나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외국인 비율은 한계로 꼽힌다. 녹색기후기금(GCF) 등 국제기구와 글로벌 기업이 많이 입주한 인천 송도에 위치한 채드윅만 외국인 학생 비율이 30%로 높은 편이고, NLCS·BHA는 외국인 학생 비율이 15%, KIS는 9%로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마저도 학교에 채용된 외국인 교사의 자녀일 경우가 많다. KIS 3학년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이모(40·제주)씨는 “국제학교라면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여러 문화를 경험하고 글로벌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데, 국내 국제학교는 이런 부분이 약해 2~3년 다니다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고 털어놨다.

고학년에 올라가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단계가 되면 사교육도 활발하다. 제주에 있는 한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박모(52·제주)씨는 “학교에서 SAT를 따로 준비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방학 때는 다들 2~3개월씩 서울에 올라가 SAT 학원을 다닌다”며 “비싼 곳은 한 달에 학원비가 천만원씩 한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내야 하는 한국 학교가 싫어서 국제학교로 왔는데, 아이를 한국 학교에 보낼 때나 지금이나 1년 총 사교육비는 비슷하다”고 씁쓸해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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