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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재인 찍겄제” “지지율 뜨면 안철수 밀어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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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3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서 만난 노모(59)씨는 “야당은 원래 호남에서 물을 타고 전국으로 올라가는 거랑께요. 그란디 문재인이는 좀 왔다 갔다 해”라고 말했다. 40년째 가구상점을 운영했다는 노씨는 그러면서도 "난 둘 다 나오면 안철수 찍을 거여. 근디 안철수는 ‘빤스’만 입고 와서 ‘살려 달라’고 해도 어려울 판인디 아직도 잘 모르는 거 아닌가”라며 혀를 찼다. 옆에서 채소가게를 열고 있는 박정현(47)씨는 “저번에 문재인이나 안철수 왔다고 하면 다들 쫓아나갔는데 이제 아무도 가보지도 않어. 정권 교체 해야 허는디 서로 갈라 묵고 뭐할라고 그라는지 모르겄어”라고 푸념을 늘어놨다. 그러자 채소를 고르던 주부 이혜영(51)씨는 “그라제. 나도 둘 다 안 해. 누구 뽑아도 우리는 다 이라고 (어렵게) 사는디”라며 맞장구를 쳤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이른바 ‘빅텐트론’에 대해 “어떻게 화장하고 포장하더라도 그건 정권교체가 아니고 새누리당의 연장이며 반기문 당선은 박근혜 연장이고 이명박 부활”이라고 비난했다. [뉴시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이른바 ‘빅텐트론’에 대해 “어떻게 화장하고 포장하더라도 그건 정권교체가 아니고 새누리당의 연장이며 반기문 당선은 박근혜 연장이고 이명박 부활”이라고 비난했다. [뉴시스]

‘야권의 심장부’로 통하는 광주의 민심은 아직 혼란스러운 듯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처음으로 ‘지역 대표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97년 김대중 후보 97.3%, 2002년 노무현 후보 95.2%, 2012년 문재인 후보 92.0% 등 광주는 대선 때 언제나 전략적 몰표를 선택했다. 일찌감치 승부가 기운 2007년 정동영 후보의 79.8%가 87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였을 정도다. 하지만 이날 광주 현지에서 접한 유권자들의 반응은 그런 몰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중·장년층 이상에선 지난 대선 때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지난 총선 때 광주를 석권하며 신성으로 떠오른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사이에서 확실하게 마음을 못 정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야권 심장’ 광주 민심 들어보니
“반기문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지지율, 문재인 39% 안철수 12%
지난 총선 때 정당 득표와 딴판

젊은층 “지금 봐서는 민주당이 대안”
장년층 “그란디 문재인 왔다갔다해”

양동시장에서 만난 김연호(77)씨는 대뜸 “그래도 될 사람 찍어야제”라며 “지금은 문재인이 더 될 거 같응께 문재인 찍겄제. 반기문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설 제수용품을 사던 손형엽(71)씨는 “지금 지지율로는 문재인 뽑을 거 같은디…. 설 지나고 안철수 (지지율) 오르면 또 안철수 밀 수도 있는 거제”라고 받았다. 반면 20~30대에선 문재인 지지 성향이 강한 듯했다. 충장로에서 만난 이명진(28)씨는 “지난해 총선 때 왜 국민의당을 지지했는지 사실 창피하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인 임야곱(34)씨는 “총선에선 국민의당으로 전략적 투표를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민주당이 대안 정당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광주 여론 형성되면 금방 호남 전체로 퍼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3일 전남 무안 국민의당 전남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력 주자들을 차례로 평가한 뒤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고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3일 전남 무안 국민의당 전남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력 주자들을 차례로 평가한 뒤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고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에게 모두 광주는 빼앗길 수 없는 요충지다. 광주의 분위기가 결정되면 이게 금방 호남 전체로 퍼져나가고 머잖아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이 광주에서 거둔 정당득표는 28.6%였다.

‘반문 정서’를 앞세운 국민의당이 기록한 53.3%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올해 1월 2주차(10~12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호남에서 39%의 지지율로 12%에 그친 안 전 대표에게 앞섰다.(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참조)

현재 문 전 대표 측이 앞서긴 하지만 과거와 달리 60%대의 득표율을 현실적 목표치로 잡고 있다. 문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장년층에선 여전히 반문 정서가 강하지만 호남도 세대별 투표 성향이 뚜렷해 충분히 기대할 만한 목표”라고 말했다. 광주에 간 문 전 대표는 22일 “광주에서 제 손을 잡아준다면 저는 광주에서도 부산에서도 지지받고, 호남에서도 영남에서도 지지받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안 전 대표도 떨어진 지지율을 광주와 호남을 기반으로 반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22일 저녁 당내 호남 중진 의원들과 만났다. 평소에 거의 하지 않는 ‘소맥’(소주·맥주 폭탄주)도 곁들였다. 회동 뒤 주승용 당 원내대표는 “대선 승리의 작전을 짰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핵심 참모는 “지역 의원들이 열심히 뛰어주면 곧 호남 기류가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태화 기자, 광주=안효성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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