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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원은 시민의 공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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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
건축가

믿기 어려운 사건이 지금 서울의 유서 깊은 지역인 경복궁 옆 서촌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추문 길 건너의 통의동 마을마당이 관리청인 대통령 경호실에 의해 2016년 12월 9일 ‘대토’라는 형식으로 민간 소유가 된 것이다. 그곳은 1997년 초에 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 마을마당이다. 그동안 도시 소공원 네트워크의 효시로 여러 차례 언론에 등장해 왔다. 생활권 공원이 거의 없는 이 지역으로서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국유지에서 사유지가 되고 말았다. 즉 시민에게 개방된 공공장소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됐다. 내막인즉 경호 목적으로 청와대 인근 주택과 이 공원을 서로 바꿨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호 자체는 논외로 치더라도 왜 이 과정에서 굳이 공원을 희생했을까.

청와대가 경호 목적으로 바꾼
통의동 유일의 생활권 공원
마을마당의 사유지 변경은
전통 마을의 당산나무 벤 꼴

전통 마을로 치면 당산나무를 베어 버린 셈이다. 이에 주민을 위시한 33명의 시민이 ‘공원을 사랑하는 시민모임’(공사모)을 결성, 현 상황의 부당함을 알리고 공원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에 돌입했다. 현수막을 걸고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아 관계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구청장과 시장을 포함한 공공기관장을 잇따라 면담했다. 구의원과 시의원, 지역구 국회의원도 접촉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오직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잘못된 것을 되돌리라는 것이다. 공원은 시민의 것이며, 또 그렇게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현실은 어떨까. 놀랍게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마당·쌈지공원·자투리공원 등은 그 상당수가 법적인 공원, 즉 도시계획시설이 아니다. 즉 임의로 지정하고 해제할 수 있다. 그만큼 개발의 유혹이 많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라질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공원은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게 들어와 있을수록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원으로 일부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이 우리 곁으로 와야 한다. 나아가 그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을 때 삶은 그만큼 풍성해지며 도시에는 활력과 생기가 돈다. 하나라도 더 만들어 그 연결고리를 더욱 촘촘하게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이미 있는 공원을 없앤다니? 그것은 시대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심각한 도발이다. 적어도 2017년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날 일은 아니다.

공원을 지속적으로 지키는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은 도시 중심부의 한 블록이 비어 있다. 작은 교회 3개가 있을 뿐이다. 1638년에 만든 도시계획의 결과다. 6만5000㎡에 달하는 이 녹지의 이름은 ‘뉴헤이븐 공원(New Haven Green)’이다. 그 한쪽에 예일대가, 반대쪽에는 시청이 자리 잡았다. 일부러 가야 하는 먼 곳이 아닌 그야말로 시내 한복판이다. 세계적인 대학과 시청사 사이의 땅, 얼마나 탐내는 사람이 많았을까. 그러나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땅이야말로 동시에 최적의 공원 부지가 아닌가. 다행히 뉴헤이븐 공원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

비결은 소유 방식에 있다. 뉴헤이븐 공원은 국유지나 시유지가 아니다. 놀랍게도 사유지다. 다만 그 소유권은 5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4명이 후임자를 선정한다. 대대손손 시민 모두의 땅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 제도화한 것이다. 그 어떤 정치가나 공공기관도, 그 어떤 개인이나 기업도 이 공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공유지의 힘이고 시민사회의 힘이다. 여기에는 ‘공원=아직 개발이 안 된 빈 땅’이라는 잘못된 등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위험에 처한 통의동 마을마당을 지키고 공원 기능을 유지하는 게 매우 시급한 단기적 과제라면, 이를 포함한 수많은 대한민국의 작은 공원에 더욱 공고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장기적 과제다. 당장 뉴헤이븐 공원처럼 실질적인 공유지를 만들 수는 없다고 해도 상징적인 공유지로 보호하는 길은 이미 있다. 도시계획시설 지정이라는 매우 효과적인 ‘무기’가 있는 것이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대한 법률 시행규칙’에 보면 설치기준·유치거리·규모 등과 무관하게 ‘소공원’ ‘역사공원’ ‘문화공원’ 등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공원을 지정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통의동 마을마당의 원소유자였던 서울시청이나 그동안 관리를 위임받아 온 종로구청 모두 필요할 때 쓰라고 준 이 행정적 도구를 왜 여태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었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상황을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유서 깊은 공원이 인근 주민의 편안한 쉼터로, 경복궁과 서촌을 찾아오는 시민의 휴식처로, 인근 보육시설 어린이의 수업 장소로, 역사답사팀이 영추문을 배경으로 모일 수 있는 장소로, 시위대와 경찰이 함께 앉아 쉬는 평화 지역으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도시 속 자연생태계로 그 다양한 기능을 영구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선택은 없다.

황두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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