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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생물학적 진화 아닌 문화적 진화, 그게 인류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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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첫 내한해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3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도킨스는 22일 세종대에서 강연을 했고, 25일엔 고려대에서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대담을 할 예정이다. [사진 우상조 기자]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첫 내한해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3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도킨스는 22일 세종대에서 강연을 했고, 25일엔 고려대에서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대담을 할 예정이다. [사진 우상조 기자]

종교와 신을 부정하고,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 간주한 현대과학의 문제적 인물 리처드 도킨스(76)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입증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대중의 호응을 끌어낸 진화생물학자다. 종교계 및 동료 과학자와의 치열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은 전투적 무신론자이자 독설가로도 한 시대를 풍미해왔다.

외부 재앙에 인류 멸망 않겠지만
동식물 감소 등 내부 위협이 문제
AI로봇, 인류 파괴할 씨앗 될 수도
인간 뇌 더 이상 커지지는 않을 것

이번 내한에서 그가 꺼낸 화두는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다.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강연에서 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면서도 특유의 통찰력으로 과학기술의 위험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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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멸종할까

지구의 숱한 생명체가 사라져왔다. 인류라고 과연 예외일까. 인간의 근원적 불안감에 대해 도킨스는 ‘생존 지속’ 쪽에 무게를 뒀다. 그는 공룡을 예로 들며 “6500만 년 전 거대한 운석과의 갑작스러운 충돌로 수백만 개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공룡을 소멸시켰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정 수준의 기술 발전을 이룩한 현존 인류는 그 같은 재앙이 닥쳐도 “땅을 파고 벙커 속으로 들어가 연명하거나, 아예 화성으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공룡을 멸종시켰던 유성의 진행 방향을 예측해 “충돌을 미리 방지하거나 로켓 등을 쏘아 궤도 자체를 수정시킬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진정한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도킨스는 “지구촌 생태계 동식물의 다양성 감소가 급격하게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인류는 어떻게 진화할까

도킨스의 원리는 ‘방사진화론’이다. 진화가 일직선상으로 진행되지 않고, 지리적 격리 등으로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결과는 비슷하다는 점에서 패턴화된 진화의 방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상은 어떨까. 도킨스는 뇌에 주목했다. 우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현재까지 300만 년 동안 계속 뇌는 커졌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큰 뇌가 생존과 번식에 더 이상 유효한 도구가 아니란 진단이다. 대신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장려하는 특정 종교에서 보듯 문화적 이유가 진화의 주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문화적·기술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보다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동차·컴퓨터를 보라. 생물학적 진화보다 수백만 배나 빠르다. 문화적 진화에 자연선택 법칙이 적용되긴 어렵다. 서로 영향을 주겠지만 생물학적 진화가 문화적·기술적 진화를 따라갈 것이다. 향후 인간의 진화는 문화적 진화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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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인류를 대체할까

그럼 과학기술의 진화가 과연 장밋빛일까. 도킨스는 인공지능(AI)을 언급하며 “앞으론 로봇이 이 강연장에서 실리콘과 탄소 기반 시대에 대해 논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로봇이 인간의 지위를 위협할 지경이다. 우리는 지금 자기 파괴의 씨를 뿌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낙관적 시선을 놓지 않았다. 도킨스는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확대 등 수세기가 지나 되돌아보면 역사의 바퀴는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과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ichard Dawkins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1941년 케냐 나이로비생. 35세에 쓴 『이기적 유전자』를 필두로 『확장된 표현형』(1982), 『만들어진 신』(2006) 등으로 과학계·종교계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2013년 ‘프로스텍트’지가 전 세계 100여 개국 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 최고 지성’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옥스퍼드대 명예펠로 (fellow)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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