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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가 본 트럼프 취임] 트럼프·시진핑 두 ‘알파 도그’ 충돌, 한국엔 기회일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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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트럼프 시대 개막

울트라 수퍼파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어도 나르시시스트의 시야에는 미국밖에 없다. 작년 대선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는 유세와 트위터로 고립주의자·보호무역주의자·백인우월주의자의 색깔을 의도적으로 과시했다. 그러나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기대가 환상이었음이 20일의 트럼프 취임사에서 드러났다. 트럼프는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 이후 새로운 비전이 미국을 지배한다. 오늘 이후 오로지 미국우선주의(only America first)만 있다. 무역·관세·이민·외교 문제에 관한 모든 결정은 미국인 노동자와 미국인 가족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추진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와 함께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바닥에는 미국 대통령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다. 트럼프 부부는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워싱턴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와 함께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바닥에는 미국 대통령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다. 트럼프 부부는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워싱턴 AP=뉴시스]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로는 이상한 것이다. 미국에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 말고는 미국이 나갈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비전도 없고 철학도 없는 대학생들의 웅변대회 수준의 취임사였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포함한 대외정책은 그가 선거 유세와 트위터에서 되풀이한 발언과 메시지에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열었다고 하지만 두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전도 철학도 안 보인 취임사
유럽 흔들고 중국 견제만 선명
불확실성에 이용할 틈 더 많아

하나는 그의 유럽 정책이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유럽연합 탈퇴)를 환영하는 말로 EU를 흔들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난타했다. 전후 70여 년간 유럽의 안정과 평화의 버팀목이 되어 준 경제의 유럽공동체와 군사·안보의 나토를 흔드는 목표가 전혀 분명치가 않다. 유럽의 약화는 러시아의 이익에 봉사할 뿐이다. 대선에서 사이버 해킹으로 자신을 성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보답이라기에는 너무 무모하다.

한국 동의없는 북 선제공격은 경계

대조적인 것이 트럼프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이다. 중국 견제라는 목표가 뚜렷하다. 왜 중국 견제인가. 하나는 경제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900억 달러(약 105조8400억원)가 더 된다. 트럼프는 그것이 중국의 환율 조작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의 팔을 비틀어 위안화를 절상시켜 무역수지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둘은 태평양 전략이다. 말 잘 듣는 일본을 거느리고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굴기를 누르는 것이다. 트럼프가 국무장관에 푸틴의 절친 렉스 틸러슨을 임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보면 의미가 심상치 않다. 중국의 목을 뒤에서 지그시 누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교역 규모는 5000억 달러(약 588조원)가 훨씬 넘고 중국이 매입한 미국 채권은 1조1200억 달러(약 1317조원)나 된다. 장사꾼 기질이 뛰어난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하나의 중국’은 협상의 여지가 있다(negotiable)고 말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공멸하는 무역전쟁이나 남중국해에서 군사적인 충돌까지는 갈 수가 없다.

트럼프 정부 안보라인은 조지 W 부시 정부 네오콘들 못지않는 군사적인 강경파로 짜였다. ‘미친개’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이 그들을 대표한다. 외교안보라인의 차관과 차관보급까지 네오-네오콘으로 채워지면 북한 붕괴론과 선제타격론은 전성시대를 맞을 것이다. 불꽃놀이 하듯 미사일을 쏘아대고 6차 핵실험까지 준비하는 김정은에게는 강력하고 확실한 억지력이 유일한 대응책임에 틀림없다.

북 비핵화 위한 정교한 외교 필요

그러나 붕괴론을 전제한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예방 공격이나 선제 공격이라는 것도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북한의 공격 징후가 확실할 때만 용납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최첨단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환영하면서도 한국의 동의 없는 선제 공격은 경계할 일이다. 선제 공격은 한반도가 전쟁터가 된다는 의미고 전쟁은 십중팔구 핵전쟁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미국 군산복합체의 제단에 바칠 수 없다. 한반도를 다시 폐허로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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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대선 유세 때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뒤의 대북 강경 발언으로 햄버거 대화론은 뒤로 밀렸지만 김정은과 트럼프의 닮은꼴 불뚝 기질로 보면 갑작스러운 대화와 선제 공격의 어느 하나도 정책 옵션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 오바마 정부 8년의 ‘전략적 인내’는 마침내 종말을 고한다. 트럼프의 외교안보팀은 목표와 수단이 확실한 동북아시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대북 견제를 더 공격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공짜를 바라서는 안 된다. 불확실성에 이용할 틈이 더 많다. 트럼프와 시진핑, 두 마리의 알파 도그(alpha dog)가 움직일 때가 한국에는 기회다. 알파 도그는 떼지어 몰려다니는 들개와 유기견들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또 한 마리의 알파 도그 푸틴의 힘도 적극 활용할 여지가 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지금처럼 역동적이면서도 정교한 외교가 필요한 때는 없다. 그 외교 목표의 알파와 오메가가 전쟁 방지와 평화적인 북한 비핵화인 건 말할 것도 없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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