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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범피로드’…자본시장에서 해법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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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안상환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 부이사장

안상환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
부이사장

범피로드(Bumpy road). 대한상의가 뽑은 2017년 경제·사회 키워드다. 올해 우리가 직면할 여러 위험을 울퉁불퉁한 길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 경제는 대외적으로 미국 금리인상,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의 영향과 대내적으로 북핵 위협, 정치 불안 등에 직면해 있어 성장이 정체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전국 2400여 기업 중 절반 이상(50.6%)이 새해 경영방침을 “보수적 경영 기조”로 정해 살아남기 위한 생존 모드를 취하는 것도 이러한 시각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그간 우리 경제는 여러 차례 위기를 모두 극복하고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전통 제조업으로는 더 이상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국내 경제 성장률은 최근 3년 연속 2%대로 세계 평균을 밑돌았고, 올해도 2% 중반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생존 모드를 택하기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IT와 제조업의 융합으로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개편되는 4차 산업혁명기에 접어들었다. 주요국은 혁신·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의 ‘첨단제조 파트너십 전략’,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중국의 ‘중국제조 2025’가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핵심기술을 가진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스위스 UBS은행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적응 순위를 25위로 낮게 평가했다.

지금 우리가 산업구조 변화를 선도하려면 무엇보다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범정부적 정책이 필요하다. 또 이를 뒷받침할 민간 부문, 특히 자본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거 우리 경제성장은 자본시장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1970~1990년대 자본시장은 코스피시장을 통해 조선·화학·철강·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의 성장을 지원했다. 2000년 전후엔 코스닥시장을 열어 IT·벤처기업 성장을 견인했다.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엔 자본시장의 자금조달 역할은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혁신·벤처기업은 사업 위험이 크고 자금 회수 기간이 길다. 모험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보수적 대출 성향을 가진 은행보다 효과적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혁신·벤처기업과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를 원활히 이어주는 것은 자본시장만이 가진 강점이다.

거래소는 앞으로 유망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면 적자를 낸다 해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 것이다. 나아가 현재 추진 중인 거래소 구조 개편을 통해 코스닥·코넥스시장을 모험자본에 특화한 시장으로 적극 육성할 것이다. 우리 경제가 범피로드에 올라탔지만 자본시장의 바람을 타고 위기를 극복하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한 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안상환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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