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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론 나바로, 중산층 연구하다 보호무역 옹호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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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피터 나바로 교수(가운데)가 지난해 첫 미국 대선 TV 토론회가 열린 뉴욕주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트럼프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블룸버그]

피터 나바로 교수(가운데)가 지난해 첫 미국 대선 TV 토론회가 열린 뉴욕주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트럼프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블룸버그]

유난히 기업인 출신이 많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 명의 경제학자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강경한 ‘반(反)중국파’인 피터 나바로(68)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나바로는 최근 트럼프가 백악관에 신설한 국가무역위원회(National Trade Council)의 수장으로 임명됐다. 국가무역위원회는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를 컨트롤하는 통상·무역정책 분야 최고 기구다. 트럼프는 ‘중국의 성장이 미국에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나바로를 “앞을 내다볼 줄 안다(visionary)”고 칭찬하며 신임하고 있다.

문제는 나바로의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맞물려 글로벌 무역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나바로는 “제조업에서 미국에 대한 중국의 경쟁우위의 41%가 불공정 거래 행위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공약과 유사하다. 미국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나바로가 트럼프의 ‘복심(腹心)’이라는 말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피터 나바로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학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바로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지만 경제학의 주류에서는 벗어난 인물이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책을 썼듯 연구분야도 주식투자부터 청정에너지, 온라인 교육, 기업들의 기부행위 등 광범위하다. 특히 정책 성향이 자유무역론자에서 보호무역론자로 크게 바뀌었다. 나바로는 1984년 『정책 게임(The Policy Game)』에서 자유무역주의의 미덕을 찬양하면서 일본차 수출을 규제한 레이건 행정부의 보호주의를 “미국의 성장과 번영을 막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연구 초점을 미국 중산층과 실업률 증가에 맞추면서 그는 외국과의 경쟁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바로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부터 미국의 무역적자가 급증했고 수백만 명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최근 10년 사이엔 중국의 경제·군사력 강화를 비판하는 3권의 저서를 통해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불공정 무역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이 중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 2011년)』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었는데 ‘메이드 인 차이나’ 칼이 성조기를 찌르면서 피가 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트럼프 “앞 내다볼 줄 안다” 신임
미국발 글로벌 무역전쟁 총대 메
레이건 때 일본차 수출 규제 비판
중국 WTO 가입 뒤 강경모드 전환

그러나 미국 내에서조차 미국의 무역적자와 중국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고, 중국산에 대한 관세가 오히려 미국 서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는 “미국 상품 분야 무역적자는 1998~2010년 사이 거의 2.5배로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제조업 일자리는 250만 개에서 270만 개로 소폭 늘어났다”고 했다.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최근 연구도 관세로 인해 물건 가격이 오를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소득이 낮은 10%와 한부모 가정이라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선 관세율 인상보다 ▶중국 국유 기업들의 미국 정보기술(IT)기업 인수 제한 ▶중국 서비스 시장 개방 요구 ▶환경·노동 기준 강화 등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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