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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의료진·보호자와 한마음 새 삶 향한 희망 샘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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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암환자는 매일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국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을 앓고 있는 환자라면 더욱 그렇다. 먹고 있는 약이 효과가 있는지, 혹시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번진 것은 아닌지 늘 전전긍긍한다. 지난 17일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종양내과 조병철 교수와 그에게 치료받고 있는 폐암 환자 4명이 병원 내 카페에 모였다. 약에 내성이 생겨 사지의 문턱에 다다랐다가 희망을 찾은 말기 폐암 환자다. 이날 조 교수와 환자들은 치료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폐암 극복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사회=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상당히 끈끈해 보인다. 어떤 인연인지 소개해 달라.

말기 폐암 환자 4명 극복기

조병철 교수(이하 조 교수)=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주치의와 환자 사이다. 한분 한분 절박한 사연을 갖고 진료실을 찾아왔던 때가 기억난다. 이들은 기존에 복용하던 치료약에 내성이 생겨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다. 지금은 최근에 개발된 신약(표적치료제)을 복용하며 폐암을 극복해 가고 있다.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는 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암 극복이란 하나의 목표를 갖고 팀워크를 발휘할 때 높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힘든 순간마다 의료진과 좋은 팀워크를 이뤄 고비를 잘 넘긴 환자들이다.

사회=환자분들 모두 말기 폐암을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상태와 극복 과정이 궁금하다.

김재룡 환자(이하 김재룡)=다른 병원에서 뇌수술을 한 후 치료제를 4년 동안 복용했지만 결국 내성이 생겼다. 암세포가 번져 폐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희망이 없어 절망하던 그때 조 교수를 만나 새로운 표적치료제를 접할 기회를 얻었다.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큰 행운이었다.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모습에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다.

박성진 환자(이하 박성진)=폐암 진단을 받은 후 항암·방사선요법, 뇌수술, 표적치료제까지 안 해본 치료가 없었다. 지치고 힘들어 잠시 치료를 쉬기도 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조 교수를 찾아갔다. 정확한 몸 상태부터 앞으로의 치료 방향, 새로 나온 표적치료제에 대한 소개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의료진을 신뢰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지금은 주치의의 말과 조언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다.

김연옥 환자=복용 중이던 치료제에 내성이 발생해 암세포가 뇌와 뼈로 번졌다. 내 이름조차 쓰지 못할 만큼 심각한 인지장애가 왔다. 병원에서 유전자검사를 진행한 결과 새로 개발된 표적치료제를 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었다. 남편은 ‘과연 약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임상연구(ASTRIS 연구)에 참여하게 돼 약을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다리에 마비가 와 휠체어를 타던 내가 이 약을 복용한 후 멀쩡하게 걷는다.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

임지현 환자=암세포가 뼈로 번져 2013년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1차 표적치료제를 복용한 후 두 달 만에 암세포가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1년 후 허리에 암세포가 생겼다. 이때 병원에서 임상시험 참여를 제안받았다. 당시만 해도 신약의 사용 허가가 나기 전이었다. 임상시험에 참여해 치료제를 복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생업을 놓지 않을 만큼 몸 상태가 호전됐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하고 가끔 등산과 골프를 즐긴다.

사회=새로 개발된 표적치료제는 어떤 약인가.

조 교수=환자 4명 모두 EGFR 유전자에 T790M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다. 1, 2차 EGFR 표적치료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나타나는 변이다. 새로 개발된 표적치료제인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는 3세대 표적치료제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5월 시판을 허가한 약이다. 이 약은 T790M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T790M 변이를 가진 폐암 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해 치료한다. T790M 변이 양성 환자 10명을 치료하면 7명에게서 극적인 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항암제나 기존의 표적치료제보다 이상 반응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겼을 때 흔히 나타나는 뇌 전이에 상당히 효과적인 약이다.

사회=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환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조 교수=연구는 전 세계 107개 병원에서 동시에 진행됐고, 병원마다 30명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 응급하고 위중한 처지에 놓인 폐암 환자가 너무 많았다. 결국 외국에 있는 제약사에 직접 연락해 120명에 대한 연구 지원을 요청했다. 놀랍게도 받아들여졌다. 이 치료제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던 환자에게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서울은 물론 지방 곳곳에서 찾아온 환자들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연세암병원에서 총 111명의 환자가 참여했다.

김재룡=신약을 접하기 힘든 환경이 안타깝다. 새로 개발된 표적치료제는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상당히 고가다. 한 달에 1000만원 수준이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운 좋게 임상시험·연구를 계기로 약을 지원받았다. 아예 치료조차 받아보지 못한 환자가 많다. 많은 폐암 환자가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고 있다. 하루빨리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 교수=지금은 폐암 환자가 새로 기존의 임상연구에 참여할 길이 없다. 참여하려면 환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기간이 지난해 11월까지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조만간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홍콩에서 진행하는 다른 임상연구가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120명 규모다. 혈액검사에서 T790M 변이가 확인된 환자라면 참여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사회=폐암은 사망률이 높고 생존율이 낮다. 최근 들어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존율이 점점 향상되고 있다. 다른 폐암 환자와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

박성진=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유언까지 썼다. 그러나 희망을 갖고 의사의 조언을 따랐더니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에는 5~10년 후를 생각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조 교수=폐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 약을 언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말기 암환자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의료진은 최신 치료 정보를 환자에게 정확히 제공해야 한다. 환자 역시 적극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요구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여기 모인 환자들도 처음에는 신약의 존재를 몰랐다.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생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혁신적인 신약이 개발되고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사회=류장훈 기자,
정리=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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