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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반기문, 본인·동생 의혹 덮으면 대권주자 자격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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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에 경악한 국민은 차기 대통령의 제1 요건으로 투명·청렴·공정성을 요구한다. 이는 유력 대권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당연히 적용된다. 한데 반 전 총장은 동생 반기상씨가 뇌물죄 혐의로 미 사법당국의 체포 대상이 됐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기상씨는 2014년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빌딩 매각을 위해 아들 주현씨와 함께 중동 관리에게 50만 달러를 주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죄 판결 시 최고형이 징역 20년인 중범죄다. 미 법무부가 우리 법무부에 기상씨의 체포를 요청해 양국이 협의에 들어간 이유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반 전 총장 측의 반응이다. “이 사건을 전혀 아는 바 없으며, 보도된 대로 한·미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면 엄정·투명히 절차가 진행돼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바란다”는 언급이 전부다. 기상씨 부자는 로비 과정에서 ‘가족’이란 말을 다섯 번이나 썼다고 한다. 유엔 수장의 친동생이 형을 팔아 글로벌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게다가 경남기업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고(故) 성완종씨가 이끈 기업이다. 성씨는 2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반 전 총장을 후원한 것 때문에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은행원 출신인 기상씨가 건설업체인 경남기업의 고문을 맡고, 건물매각에 연루된 것도 반 전 총장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데도 “난 모르는 일”이란 식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어물쩍 넘어간다면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반 전 총장이 정말 몰랐다면 유엔 수장으로 친인척 관리에 실패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문제다. 만약 알았다면 어디까지 알았으며 왜 막지 못했는지 해명하고, 기상씨에게 “미국에 자진 출국해 조사받으라”고 명해야 한다.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농단에 고통 받아온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다.

반 전 총장 본인도 23만 달러 수수 의혹 보도에 대해 형사 고소라도 해서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안 그러면 ‘반기문 바람’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