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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신통찮은 배아는 자연탈락, 인류 보존 위한 ‘엄마의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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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벽을 파고 들어가고 있는 배아. 결국에는 엄마의 혈관과 연결된다.

세포벽을 파고 들어가고 있는 배아. 결국에는 엄마의 혈관과 연결된다.

나는 성숙한 세 여인과 산다. 아내와 두 딸이다. 아쉽고 미안하게도 두 딸은 엄마 대신 아빠를 빼닮았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식성과 성격마저도 그렇다. 당연히 계획에 따른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바라는 엄마보다는 걱정은 붙들어 매고 사는 아빠와 훨씬 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여인은 아빠인 나만 빼돌리고 자기네끼리만 공유하는 규칙적인 경험이 있다. 월경(月經)이 바로 그것이다.

월경은 진화의 결과

월경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곁에서 보기에도 월경은 매우 귀찮고 피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어떤 고통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작 가끔 월경을 건너뛰거나 주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걱정한다. 심지어 아내는 친구들이 완경(完經)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기도 곧 닥칠 일이라면서 우울한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

도대체 월경은 왜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어허, 이 사람은 성교육도 받지 못했나”라며 배란과 수정, 착상 등등의 단어를 쓰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하려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질문은 그게 아니다. 왜 사람은 월경을 하느냐는 것이다. “아니, 새끼를 낳는 젖먹이동물은 모두 월경을 하는 것 아냐? 우리 집 개는 월경을 하지 않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사람 같은 영장류들만 월경을 하는 것인가?”

사람·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 등만 월경

동부코끼리땃쥐(Elephantulus myurus). 코끼리땃쥐는 유인원, 박쥐와는 다른 경로로 월경을 진화시켰다

동부코끼리땃쥐(Elephantulus myurus). 코끼리땃쥐는 유인원, 박쥐와는 다른 경로로 월경을 진화시켰다

그렇다. 모든 젖먹이동물이 월경을 하는 건 아니다. 또 모든 영장류가 월경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 그리고 몇 종류의 원숭이만 월경을 한다. 그 밖에 월경을 하는 동물은 몇 종류의 박쥐와 코끼리땃쥐뿐이다. 코끼리땃쥐는 이름처럼 코가 기다란 설치류로 개미핥기처럼 개미 같은 작은 벌레를 기다란 혀로 핥아먹는다. 오로지 아프리카에만 산다.

기본적으로 월경에는 단점이 많다. 통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철과 영양분을 잃는다. 그리고 특유의 피 냄새를 풍겨서 포식자를 유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젖먹이동물은 월경을 하지 않는다. 젖먹이동물이 후손을 남기는 데 월경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진화 과정에 월경은 왜 생겨났을까? 도대체 월경이 주는 더 큰 장점이 무엇일까? 특히 사람들은 왜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월경혈(月經血)을 배출할까?

1950년대부터 다양한 가설이 등장했다. 첫째, 월경을 함으로써 자궁과 질에서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월경혈은 세균이 살기 아주 좋은 곳이다. 둘째, 임신이 되지 않았을 때 자궁을 두텁게 유지하는 것보다 월경을 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적다고 한다. 설득력이 약하다. 자궁벽이 얇아서 절약하는 에너지보다 자궁벽을 허물었다가 다시 짓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더 많다. 셋째, 월경을 함으로써 임신하지 않았다는 신호를 남자에게 보내서 다시 짝짓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터무니없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자신이 지금 임신 가능한 때라고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부터 다양한 학설 등장

자궁내막은 매달 한 번씩 두터워졌다가 두 층으로 분리된다.

자궁내막은 매달 한 번씩 두터워졌다가 두 층으로 분리된다.

몸의 각 기관은 유전자를 퍼뜨리기 적합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자궁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98년 영국 리버풀 대학의 생물학자 콜린 핀(Colin Finn)은 월경은 나쁜 배아를 배출하기 위해 진화되었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가장 두꺼운 상태의 자궁내막.

가장 두꺼운 상태의 자궁내막.

임신은 착상에서 시작된다. 착상은 배아가 자궁내막에 자리를 잡는 과정이다. 자궁내막은 말 그대로 자궁 안쪽의 막이다. 배아는 절묘한 시점에 호르몬을 배출해서 자신이 착상할 수 있도록 엄마의 자궁내막을 변형시킨다. 여기에 성공한 배아는 자궁 안에 태반이라는 기관을 만들어서 숨는다. 태반을 둘러싸고 있는 엄마의 세포들은 태아에게 공급하는 영양분을 조절하려 하지만, 태아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엄마로 하여금 자신에게 영양분을 무제한적으로 공급하게 만든다. 엄마의 혈당의 높아지고, 동맥이 팽창하고 혈압이 높아진다. 그리고 열 달 동안 엄마의 영양분을 성공적으로 흡수하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궁내막은 배아가 착상하기 힘들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착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건강한 배아만 임신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했다. 건강하지 못하고 착상에 성공하지 못한 나머지 배아는 제거한다. 착상과 제거의 결정은 자궁내막의 두께가 결정한다. 착상은 자궁내막이 두꺼울 때만 일어난다. 즉 임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미라는 뜻이다. 배아가 건강하지 못할 경우 자궁내막을 헐어서 배출한다. 이것을 자연 탈락막화(spontaneous decidualisation)라 하고 그 결과가 월경이다.

왜 월경은 모든 젖먹이동물에게서 일어나지 않을까? 배아가 엄마의 자궁내벽에 파묻히는 이유는 영양분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동물마다 그 양상이 다르다. 소·말·돼지는 단지 자궁벽의 표면에 붙는 정도다. 개와 고양이는 조금 더 파고 들어간다. 그런데 사람처럼 월경을 하는 동물의 배아는 자궁내막을 파헤치고 깊이 들어가서 아예 엄마의 혈액으로 목욕을 할 정도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 ‘진화의 줄다리기’가 일어나는 이유다. 엄마는 장차 태어날 모든 아기에게 골고루 영양분을 배정하기 원하지만 배아는 가능하면 엄마로부터 많은 자원을 얻어내려고 애쓴다. 배아가 공격적일수록 엄마는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

또 배아는 유전적으로 비정상적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임신이 초기 몇 주 사이에 실패한다. 특히 인간은 유산 확률이 매우 높은데 이것은 아마도 특별한 짝짓기 습관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젖먹이동물은 실제로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 동안에만 짝짓기 한다. 그런데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와 박쥐 그리고 꼬끼리땃쥐는 생식 주기 동안이라면 언제든지 짝짓기를 할 수 있다. 이것을 확장된 짝짓기(extended copulation)라고 한다. 그 결과 난자는 수정되기 전까지 며칠을 기다릴 수도 있다. 노화된 난자는 비정상적인 배아가 될 수 있다. 자연 탈락막화는 엄마가 자원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엄마가 나쁜 배아에게 자원을 투자하는 것을 막고 다음 기회에 성공적으로 임신하기 위해 몸을 가꾸어 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월경을 하는 동물들은 모두 임신 기간이 길고 한 배에 기껏해야 한두 마리의 후손을 남긴다. 임신 실패는 엄청난 자원의 낭비를 의미한다. 진화는 불운한 임신을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궁내막의 자연 탈락막화를 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월경을 수수께끼를 푸는 데 가까이 갔다. 월경은 진화사에서 적어도 세 차례에 나뉘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 월경은 생식 방식이 진화하는 동안에 생긴 우연한 부산물이다. 공격적인 배아에 대항한 결과일 수도 있고, 배란기와 상관없는 짝짓기 습관 때문이거나 둘 다의 결과일 수도 있다.

배란기와 상관없는 짝짓기 결과일 수도

월경을 하는 동물일지라도 실제로 월경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야생 젖먹이동물들은 삶의 대부분을 임신과 새끼 양육에 쓰기 때문이다.

일부 인간 사회에서도 여전히 그렇다. 어떤 방식의 피임법도 사용하지 않는 자연번식 사회에서는 월경이 매우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가임 여성들이 이미 임신 중이거나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리의 자연번식 집단인 도곤(Dogon)의 여성들은 평생 100번 정도의 월경을 경험한다. 아마 우리 종의 조상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 여성들은 평생 300~500회의 월경을 경험한다. 이것은 진화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월경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생물학적인 사건으로 인류라는 생물종을 보존하기 위해 진화되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월경증후군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 여성혐오의 소재로도 쓰이고 있다. 고통스러운 월경은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 덕분에 우리가 푸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월경 만세!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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