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듣다 가슴 저릿…클래식에 처음 빠졌어요

중앙일보

입력 2017.01.20 00:58

업데이트 2017.01.20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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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팬텀싱어’는 1대1 대결, 듀엣, 3중창 등을 거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왔다. 결승 진출 세 팀이 두 차례 대결로 최종 우승팀을 정한다. 사진은 13일 방송된 손태진·곽동현·이동신·윤소호(왼쪽부터)가 부르는 ‘halo’의 한 장면. [사진 JTBC]

‘팬텀싱어’는 1대1 대결, 듀엣, 3중창 등을 거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왔다. 결승 진출 세 팀이 두 차례 대결로 최종 우승팀을 정한다. 사진은 13일 방송된 손태진·곽동현·이동신·윤소호(왼쪽부터)가 부르는 ‘halo’의 한 장면. [사진 JTBC]

“클래식이 단지 지겹고 어려운 게 아니라 얼마나 고급스런 음악인지 전달해 줘 반가웠다.”(음악평론가 한정호)

JTBC ‘팬텀싱어’ 내주 최종회 방송
뮤지컬·팝페라·유럽가곡 등 경연
남성 4중창단 뽑는 과정 보여줘
베이스·바리톤 중저음 매력 발산
가요 위주 오디션 프로에 새 바람

“이탈리아어·스페인어를 배우고 싶게 만드는, ‘열공’을 부르는 방송”(ID 꺼벙이조앙)

‘팬텀싱어’의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 들. 왼쪽부터 바다·마이클리·김문정·윤종신·윤상·손혜수.

‘팬텀싱어’의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 들. 왼쪽부터 바다·마이클리·김문정·윤종신·윤상·손혜수.

다음주 최종회를 앞둔 JTBC 음악프로그램 ‘팬텀싱어’(금 오후 9시40분)가 클래식 경연의 새 장을 열고 있다. “한국판 ‘일디보’를 만들겠다”며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단을 뽑는 과정을 3개월여간 보여준 ‘팬텀싱어’는 그간 TV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뮤지컬·팝페라·유럽 가곡 등 범클래식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5일 방송은 시청률 5%(닐슨코리아)를 훌쩍 넘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언급 횟수 등을 합산하는 ‘화제성 조사’에서도 점유율 21.8%(굿데이터코퍼레이션)를 기록, ‘미운 우리 새끼’(16.3%) 등을 제치고 금요일 비드라마 부문 1위에 올랐다.

19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팬텀싱어` TOP 12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결승에 진출한 12명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JTBC]

19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팬텀싱어` TOP 12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결승에 진출한 12명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JTBC]

프로그램에서 불렸던 이탈리아 가곡 ‘ll libro dell’amore’(사랑에 관한 책)가 음원 차트 9위에 오르는 등 크로스오버 음악 열풍도 불러 왔다. KBS FM ‘가정음악’ 진행자인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팬텀싱어’에 나왔던 노래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며 “편중된 음악 시장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했다. 과연 ‘팬텀싱어’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① 저음의 재발견
최종 결승에 진출한 `흥스프레스` 멤버들. 왼쪽부터 백형훈 이동신 고은성 권서경. [사진 JTBC]

최종 결승에 진출한 `흥스프레스` 멤버들. 왼쪽부터 백형훈 이동신 고은성 권서경. [사진 JTBC]

2000년대 중반 이후 TV예능을 주도해 온 건 오디션·경연 프로그램이었다. 1세대 신인발굴(슈퍼스타K·K팝스타), 2세대 기성가수 대결(나는 가수다·불후의 명곡)에 이어 3세대 퀴즈형(히든싱어·복면가왕) 등 최근까지 다양하게 변주해왔다. 하지만 장르적으론 팝·가요를 벗어나지 못했다. 귀에 익숙한 원재료를 감히 바꿀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성기완 계원예술대 교수는 “팝·가요 일변도에 식상해하는 대중의 욕구를 ‘팬텀싱어’가 영민하게 포착해냈다”며 “정통 클래식까진 포섭하진 못했지만 ‘클래식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데 일조했다”고 전했다.

최종 결승에 진출한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들. 왼쪽부터 김현수 이벼리 고훈정 손태진. [사진 JTBC]

최종 결승에 진출한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들. 왼쪽부터 김현수 이벼리 고훈정 손태진. [사진 JTBC]

특히 주목을 받은 건 중저음 음역대였다. 여태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건 곧 ‘고음작렬’이었다. 얼마나 높은 음을 내는가를 가창력을 좌우하는 잣대로 삼곤했다. 반면 4중창단을 선발하는 ‘팬텀싱어’에선 테너 등 고음역대 이외 베이스·바리톤도 균형감있게 배분했다. 시청자 박희정(36)씨는 “따스하고 포근한 저음을 들을때마다 그야말로 ‘심쿵’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이었던 김문정 음악감독 역시 “그저 소리 자랑하는 게 무조건 좋은 노래는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줬다”고 했다.

권서경

권서경

결승까지 진출한 바리톤 권서경(29)씨는 “한국 성악계에서 테너에 비해 베이스·바리톤이 소외됐던 건 사실”이라며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줘 기뻤다”고 전했다.

② 나보다 ‘우리’
최종 결승에 진출한 `인기현상` 멤버들. 왼쪽부터 백인태 유슬기 곽동현 박상돈. [사진 JTBC]

최종 결승에 진출한 `인기현상` 멤버들. 왼쪽부터 백인태 유슬기 곽동현 박상돈. [사진 JTBC]

불우한 가정환경, 독특한 이력, 팀원 간의 갈등 등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흔히 작동했던 드라마적 요소가 배제됐다는 점도 ‘팬텀싱어’의 차별점이었다. 노윤 작가는 “출연자 나이도 가급적 노출하지 않았다”라며 “음악 이외의 것이 음악을 가려선 안 된다는 게 기획의도”였다고 한다. 김형중 PD 역시 “시각장애우 아버지가 있거나 준재벌급 출연진도 있었다. 이른바 ‘감성팔이’ 요소는 충만했지만 유혹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은성

고은성

스토리텔링이 줄어들자 남는 건 음악이었다. 특히 최적의 4중창 하모니를 내기 위해선 팀원간의 조화·협력이 필수였고, 이 와중에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는 모습 등이 자연스레 부각됐다. 정수연 한양대 겸임교수는 “가까이 있는 옆사람마저 제쳐야 생존한다는 1등 지상주의에 지친 현대인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새삼 환기시켰다”고 분석했다.

③ 중장년층 공략
유슬기

유슬기

연습 과정은 빡빡하고 치열했다. 출연진 대다수가 본업이 있는 터라 보통 오후 10시쯤 모여 밤을 꼬박 새곤 했다. 오페라 출연을 병행한 권서경씨는 몇 차례 코피를 흘렸다고 한다. 성악가 유슬기(31)씨는 “생방송 선곡을 위해 이틀전 4명이 낮 2시에 모여 다음날 새벽 6시에 헤어졌다. 16시간 동안 1000곡쯤 들은 것 같다. 그래도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했다.

걸그룹 득세, ‘프로듀스 101’ 인기 등 최근 TV의 주 공략층은 10~20대였다. 반면 ‘팬텀싱어’는 중장년층에서 외려 반향이 컸다. 시청자 신경화(44)씨는 “‘지금껏 몰랐던 이탈리아·스페인 가곡 듣는 맛에 푹 빠졌다”며 “‘팬텀싱어’를 보는 걸 꽤 폼나는 문화향유인 양 자랑하는 친구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정공법을 택한 ‘팬텀싱어’가 TV음악프로그램을 한단계 진화시켰고,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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