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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AI를 배운다, 알파고 바둑 흉내 내는 이창호·커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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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새해 벽두 바둑계의 화두로 재부상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에 걸쳐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서 세계 최고수를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두며 다시 관심의 중심에 섰다. 파장은 지난해 3월 첫 등장 때만큼이나 크다. 당시에는 충격은 컸지만 기보가 다섯 개뿐이라 바둑의 내용적 변화를 불러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용적인 면에서 참고할 ‘알파고’의 최신 버전 기보가 60개나 된다. ‘알파고’의 재부상에 따른 바둑계의 변화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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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따라 두기

지난 16일 열린 제18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본선 24강전에서 생소한 포석이 나왔다. 이창호 9단이 소목을 둔 다음 두 칸 벌림으로 우하귀를 지킨 것이다. 원래는 견실한 집을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로 잘 두지 않던 모양이다. 출처는 ‘알파고’였다. 이창호 9단은 “‘알파고’ 최신 기보에 나온 모양을 따라 둬 봤는데 좋은 수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알파고’의 수법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호, 대회 나와 변칙 포석 모방
“이해 안 가는 부분 많아 계속 연구”
커제는 ‘흉내 바둑’으로 약점 분석

최근 실전 대국에서 ‘알파고’ 수법을 응용하는 프로기사들이 늘고 있다. 한종진 9단 역시 “알파고가 보여준 수를 연구하고 실전에 적용해보고 있다”며 “막상 둬 보니 둘 만한 가치가 있는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알파고’ 파헤치기

단순히 따라 두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주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은 ‘알파고’ 최신 기보 60개를 책으로 만들어 공유했다. 목진석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은 “선수들이 함께 ‘알파고’의 기보를 분석하고 새로운 포석과 수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기사들이 분석한 ‘알파고’의 특징은 대세관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송태곤 9단은 “사람은 중앙을 계산할 수 없어 부분에 치우친 수읽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알파고’는 중앙까지 아우르는 수읽기를 하고 전체적인 균형 감각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수읽기가 언급됐다. 조한승 9단은 “흔히 좋은 수, 나쁜 수로 알려진 수들에 대해 ‘알파고’는 다른 해석을 하는 것 같다. 기본에 충실하되 선입견이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AI 허점 찾기

뒤늦게나마 AI의 허점을 찾기 위한 노력도 시작됐다. 대만의 저우쥔쉰 9단은 지난 4일 글로벌 바둑 사이트 한큐바둑에서 ‘알파고’와 대결을 벌이며 상대의 수를 69수까지 똑같이 따라 뒀다. 중국의 커제 9단 역시 지난 6일 중국의 AI 바둑 프로그램 ‘싱톈(刑天)’의 이전 버전인 ‘줴이(絶藝)’와 맞붙으며 상대의 수를 32수까지 복사했다. 이른바 ‘흉내 바둑’을 두면서 이기기 위한 노골적인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커제 9단은 지난 15일 중국의 인터넷 매체 ‘시나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과학이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컴퓨터가 무조건 사람을 이기겠지만 현재는 컴퓨터에 분명 약점이 있다고 본다”며 “프로기사가 계속 연구를 한다면 AI를 이길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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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로 인해 바둑계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다혜 4단은 “이제는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패배감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워 보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이번 기회로 바둑의 패러다임이 다시 한번 크게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구글 딥마인드의 아자황 연구원은 1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올해는 구글 딥마인드 팀이 맞닥뜨리거나 ‘알파고’가 완수해야 할 수많은 도전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 ‘알파고’의 또 다른 도전을 예고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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