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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재가 된 ‘은둔형 외톨이’…손 놓고 방치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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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4세 Y씨의 방문은 하루에 네댓 번만 열린다. 70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밥 먹을 때나 화장실을 이용할 때를 빼곤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로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보낸다. 한때 부모의 의뢰를 받아 상담을 했던 정신과 전문의도 3년 전부터 발을 끊었다. 방구석에 틀어박힌 그의 외톨이 생활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Y씨는 20대 초반부터 세상과 절연 상태다. 고3이던 2001년 학업 스트레스로 자퇴했고 세 번의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계속 떨어졌다. 그는 의사와의 상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방문을 잠갔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은둔형 외톨이’가 장년이 됐다. 우려의 목소리가 잠잠해진 십수년 동안 그들의 ‘격리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다. 청년기에 잠시 정상적으로 지내다가 좌절을 겪고 다시 집으로 숨어든 이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 사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8년 귀국한 이모(41)씨는 취업 실패가 잇따르자 “사회에 불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며 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다.

2000년대 10~20대였던 외톨이들
나이 들어서도 사회 생활 못 해
부모가 돈 못 벌면 가정 무너지기도
“자포자기 상태, 묻지마 범죄 우려
일본처럼 사회복귀 도울 시스템을”

이들처럼 10대 후반~20대 초반부터 외톨이로 지내다 장년이 되어서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한국 사회의 상황을 추정할 만한 국제 통계가 있는데, 한국의 30~40대는 심각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사회지표, 사회적 관계망’에서 한국은 36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이 지표는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할 가족·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로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관계망의 형성 정도를 파악한다. 한국의 30~49세는 78.8%로 36개국 중 35위였다.

“우울할 때 이야기 상대가 있느냐”는 통계청 조사(2015년)에서도 20대는 88.8%가 “있다”고 답했지만 30대 86.5%, 40대 83.2%, 50대 79.5%로 나타났다. 10명 중 한두 명 이상이 가족과 친구, 이야기 상대 등이 없다는 결과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제기해 온 여인중 동남정신과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를 도와줄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입학·취업·결혼 등 사회 생활의 진입로가 좁아지면서 청소년기의 외톨이가 장년까지 이어지는 상황이 방치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은둔 생활이 길어지면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부모의 나이가 들고 경제력도 없어지면 가정이 통째로 무너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앞서 전국 54만여 명의 ‘히키코모리(引き籠り·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겪은 일본도 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80대에 접어든 고령의 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지며 생기는 사회문제를 ‘80·50’으로 부르며 대책을 찾고 있다. 복지예산으로 이들이 따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전문 상담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장년의 외톨이 문제는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성이 파괴되고 가족의 지원이 사라지면서 심리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목숨을 끊거나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효고현에서는 지난해 3월 40대 외톨이 남성이 지역주민 5명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장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이 교수는 “지금처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간 각종 범죄가 터질 위험이 있다.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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