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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스타 리허설 공짜로 즐기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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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연장 ‘나음아트홀’ 운영 장은훈 성악가
매달 15~20회 ‘미리 하는 음악회’열어
티켓값 비싸 관람 힘든 이들에게 기회

지난 12일 저녁, 서울 개포동의 한 지하 공연장에 조명이 켜졌다. 관객 30여 명이 자리를 채운 가운데 ‘작은 음악회’가 시작됐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142번. 피아니스트 양고우니씨가 숨을 가다듬자, 60대 노부부는 눈을 지그시 감았고 친구끼리 온 고교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윽고 잔잔한 피아노 음이 공간 가득 퍼졌다. 약 십 분 후 박수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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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장의 이름은 ‘나음아트홀’. 오페라 성악가 출신 장은훈(56)씨가 운영하고 있다. 장씨는 2005년부터 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 등에서 공연이 예정된 클래식 음악가를 초청해 이곳에 리허설 무대를 마련해 왔다. 관객들은 정식 공연이 열리기 전에 이들의 공연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미리 하는 음악회’라고 불린다. 매달 15~20회 열리며, 입장료는 없다. 장씨는 “관객은 실력파 음악가의 공연을 무료로 즐기고, 음악가는 관객 분위기를 미리 살펴볼 수 있다 ”고 말했다.

한국가곡예술마을 나음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장은훈씨. [사진 조문규 기자]

한국가곡예술마을 나음아트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장은훈씨. [사진 조문규 기자]

1983년 한양대 성악과를 나와 9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국립음악원을 최우수로 졸업한 장씨는 원래 서울에서 성악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잊혀지고 있는 우리 가곡과 클래식을 널리 알리겠다’는 생각에 이곳의 문을 열었다. “가곡은 우리 시(詩)와 역사가 가사에 담겨 있는 노래지만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또 클래식 공연은 티켓 값이 비싸 대중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요. 남녀노소 상관없이 가곡과 클래식을 골고루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 공간의 취지입니다.” 피아니스트인 문용희 피바디음악원 교수, 첼리스트 박경옥 한양대 교수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가 이곳을 거쳤다.

장씨는 고향인 전남 순천에도 ‘한국가곡기념관’이란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유명 성악가를 초청해 관객이 무료로 입장 가능한 ‘순천국제가곡제’를 한 달에 1~2회 연다. 지난해에는 바리톤 박흥우 등이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장씨의 수입은 공연장을 일반인에게 대관하는 비용(시간당 10만원)과 레슨비가 전부다. 게다가 유명 바리톤은 초청비가 비싸 지출이 수입을 넘길 때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서울 공연장(나음홀)과 전남 공연장(한국가곡기념관)이 여태껏 별탈 없이 운영되는 건 두 곳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챙겨온 동갑내기 아내 이종례씨와 장근지(29)·장의현(23)씨 남매 덕분이다. 이씨는 “3년 전 대치동 공연장이 물에 잠겼을 땐 캐나다에 취업한 딸(근지)이 매달 100만원씩 운영비를 송금해 줬다. 부모의 고생을 지켜보던 막내 의현이는 ‘아버지의 뜻을 물려받겠다’며 이탈리아 음악원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며 두 자녀를 자랑스러워했다.

장씨는 가곡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가곡 창작도 하고 있다. 청소년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청가(靑歌), 한국인의 구강 구조에 맞춘 창법인 본이가(本吏歌) 등이 대표적이다. 또 최근엔 서울과 떨어진 지방의 중·고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힐링 콘서트’도 열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과 순천 공연장을 기반으로 ‘한국가곡학교’를 세우고 싶어요. ”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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