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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아마존 ‘알렉사’가 삼성·LG에게 보여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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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임미진 산업부 기자

임미진
산업부 기자

16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연 ‘CES(소비자가전전시회) 2017 주요 이슈 점검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를 전해듣고 안도감이 들었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 주재한 이 자리에는 삼성·LG전자와 이동통신 3사 등 국내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20여곳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대표해 나온 참석자들은 큰 맥락에서 비슷한 참관평을 내놨다. “아마존 등 미국 인공지능(AI) 플랫폼의 기세가 보통 무서운 게 아니다. 중국의 하드웨어 경쟁력도 위기감이 들 정도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번 CES에서 아마존의 AI 시스템 알렉사와 중국 기업들이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평범한 참관평이 반가운 이유는 두 회사가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 때문이다. CES 관련 행사가 한참이던 2주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그렇지 않았다.

CES에 참가한 한국 기자들 앞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대표와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각각 간담회를 열고 해묵은 TV 화질 설전을 재연했다. 삼성이 신제품 QLED(퀀텀닷발광다이오드) TV 발표장에서 LG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와 화질 비교 시연을 펼친 게 시작이었다. 발끈한 한 부회장은 “그래봤자 액정표시장치(LED)에 불과하다”고 QLED를 폄하했고 윤 대표는 “비교도 안되는 제품”이라며 LG 측의 신제품을 공격했다.

세계 TV 시장 1, 2위를 다투는 두 회사로선 치열한 경쟁은 숙명이다. 하지만 CES 전시장을 조금만 둘러봐도 두 회사가 더 이상 TV 경쟁에 집착할 때가 아니란 건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삼성·LG전자의 전시장을 포위하듯, 하이센스·TCL·창훙전자 같은 중국 TV업체들이 요란한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세계 TV 시장 전체 규모도 쪼그라드는 판에, 가성비를 내세운 이들 제품에 밀려 두 회사의 TV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아마존 알렉사를 보면 답답합니다. 음성인식 기술은 한 회사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그렇습니다.” CES를 참관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우연히 귀국 비행기편에서 만난 기자에게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AI 음성인식 기술을 다지기 위해선 한국어에 대한 기반 연구와 여러 업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AI와 이를 기반으로 온갖 기기를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은 삼성·LG전자가 반드시 정복해야 할 다음 신대륙이다. AI와 IoT 모두 어느 회사가 더 많은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했느냐로 기술 우위가 판가름난다. 세계 가전 시장을 평정한 삼성과 LG가 자사 제품을 통해 모이는 빅데이터를 공유한다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 다음 CES에서 “미래 먹거리를 위해 통크게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두 회사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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