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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일·가정 균형 가능한 곳부터 도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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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추인영
추인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추인영 사회 1부 기자

추인영
사회 1부 기자

“내가 장담하는데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상용화되는 게 더 빠르다.” “저런 생활은 살 만한 대기업이나 공무원 몫이지, 작은 기업은 꿈도 못 꾼다.”

지난 17~18일 본지 14면에 보도된 ‘일·가정 균형 우수기업’ 기사에 대해 온라인 공간에선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세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학교까지 데려다준 뒤 출근하는 아빠, 2년째 육아휴직 중인 남편 등의 사연에 “SF(공상과학)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또 “경영 성과가 좋고 돈이 많은 대기업이라서 가능하다”는 언급도 나왔다.

하지만 본지가 소개한 일·가정 균형 우수기업들은 결코 ‘풍족하고 돈 많은’ 회사만은 아니다. 여직원에게 육아휴직 2년을 보장하는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몇 년간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 왔다. 또 사장 부부를 포함해 전 직원이 정시 퇴근하는 문화를 정착시킨 바비즈코리아는 직원이 50여 명에 불과한 소기업이다. 골프존네트웍스의 모기업인 ㈜골프존도 1인 벤처기업에서 출발해 어렵게 성장한 회사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는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최고경영진(CEO)의 의지다. 일·가정 균형제도를 시행할 여건이 모두 충족되길 기다리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도입했다는 것이다. 신종성 골프존네트웍스 사장은 “직원복지제도를 시작할 때 비용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시작하니 복지제도가 자연스럽게 확대됐고 효과도 컸다”고 말했다.

바비즈코리아는 5일 오후 6시가 넘자 대부분 퇴근해 서울 하계동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다. [사진 박종근 기자]

바비즈코리아는 5일 오후 6시가 넘자 대부분 퇴근해 서울 하계동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다. [사진 박종근 기자]

물론 회사별로 업무 성격과 재정 상황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제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선뜻 도입하기 쉽지 않다. 또 직원들이 바라는 기대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이렇다 할 제도도 갖추지 못한 소기업 종사자들은 “직원 혼자서 여러 업무를 하기 때문에 휴직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반면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는 대기업 직원들도 그들대로 “복지제도를 누리는 직원은 극히 일부일 뿐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들은 역설적으로 일·가정 균형정책이 확산될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너무나 심각한 과제가 돼 버린 저출산 문제는 일자리·주거·보육·양육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개선돼야 해결 가능하다. 그러려면 한꺼번에 하려 하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도전해 나가는 자세가 절실하다. 기업별로, 단체별로 일·가정 균형을 위해 가능한 제도들을 찾아야 한다. 정부도 이들에게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저출산 해결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추인영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