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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농단 피의자 추락한 ‘미스터 법질서’ 김기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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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7일 오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소환조사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17일 오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소환조사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미스터(Mr.) 법질서’라는 별명을 가진 김기춘(78)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법의 심판대에 설 위기에 처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그를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관리를 총괄한 책임자로 지목하고 17일 소환조사했다.

블랙리스트 개입 직권남용 혐의
조윤선도 같은 혐의로 조사받아

김 전 실장은 검찰·법무부 간부 시절 “법을 지켜라. 자유 없는 질서는 있어도 질서 없는 자유는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법질서를 어긴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1992년 ‘초원복국집’ 사건 때다. 14대 대선을 앞두고 부산 지역 기관장들과 모여 “우리가 남이가.… 지역감정을 조장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게 녹음돼 공개됐다. 그는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등록한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선거법 규정(36조 1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 신청을 내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공소가 취소됐다.

현재 그가 받고 있는 혐의는 직권남용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막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설령 증거가 있어도 자유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주장할 것이다”며 “그의 법질서는 진보적 이념을 용납하지 않는 극보수주의다”고 전했다. 실제 특검팀은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김 전 실장이 2014년 10월 ‘좌파들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것을 제대로 챙기라고 했는데 왜 보고가 없느냐. 서두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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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승승장구했다. 64년 검사가 된 그는 74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최연소 대공수사국장 자리에 올랐다. 88년 검찰총장, 91년 법무부 장관이 됐고 현 정권에서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법질서’를 앞세웠지만 오히려 법을 유린한 피의자가 됐다. 김 전 실장과 더불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에 개입한 혐의로 조윤선(51) 문체부 장관도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글=문병주·송승환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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