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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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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기자 생활을 막 시작하던 90년대 초중반, 그러니까 네이버 검색창은 물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엔 야근을 할 때마다 독자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한두 통씩은 꼭 받았다. 대개 친구끼리 술 한잔하다가 어떤 팩트(사실)에 대해 의견이 엇갈릴 때 심판자 역할을 부탁하려고 전화를 해 온 경우였다. 어쩌면 오답일 수 있는 답을 일러주더라도 바로 탄성이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아, 틀렸네.” 일상생활 중 뭔가 논란이 될 때도 누군가 “그거 신문에 났어”라고 한마디하면 그 순간 상황은 끝났다. 신문에 난 ‘사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지만 불과 10~20년 전 얘기다. 이른바 유력 일간지는 이렇게 신뢰할 만한, 그리고 꼭 알아야만 하는 정보를 독자에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그런데 지금은 신뢰를 받기는커녕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언론인으로서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반성할 부분도 적지 않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가짜 뉴스 못지않게 독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시시콜콜 뉴스’가 아닐까 싶다. 황색 언론이라는 조롱을 받을 법한 가십성 기사들이 소위 유력 언론사 로고를 달고 버젓이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으니 말이다.

페이스북을 타고 돌아다니는 각종 포스팅은 물론 네이버의 연예 뉴스 창엔 ‘윤아, 시크+도도 변신’ 같은 연예인 관련 콘텐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예 뉴스 소비량이 정치·사회 등 다른 그 어떤 뉴스 소비보다 많다는 불편한 현실에 정통 미디어들까지 나서서 굳이 알 필요 없는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일거수일투족까지 기사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 고백하자면 지난 일주일 동안 중앙일보 로고를 달고 세상에 나가 꽤 많은 클릭 수를 올린 기사 중에도 ‘설리 인스타그램 비공개 전환’류의 SNS를 겨냥한 ‘정보 가치 제로’인 연예인 관련 콘텐트가 적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가십이 연예 기사만으로 그치면 좋으련만. 저널리즘의 기반이 취약한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전통 있는 유력 일간지까지 디지털 기사면 무슨 면죄부라도 받는 양 각종 가십성 정치·사회 기사를 쏟아내는 걸 보면 조마조마할 때도 많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문학을 논하는 인터뷰를 해 지면과 디지털에 내보낸 뉴욕타임스가 부럽다. 대선 직후 미국 언론도 이런저런 이유로 반성문을 쏟아내긴 했지만 정치를 가십으로 소비하지 않고 독자에게 이렇게 품격 있는 콘텐트를 던져주니 말이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