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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난 먹으러 미술관 간다···작품에 둘러싸여 한 끼, ‘맛있는 갤러리’의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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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플레이스 된 미술관 식당·카페···전시회 아니라도 간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빈 미술사 박물관의 카페 레스토랑. 1층 원형 홀 가운데 위치해 박물관 내부의 웅장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명물인 비엔나 커피가 이곳 인기 메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빈 미술사 박물관의 카페 레스토랑. 1층 원형 홀 가운데 위치해 박물관 내부의 웅장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명물인 비엔나 커피가 이곳 인기 메뉴다.

전시 보러 갔다가 잠깐 쉬는 곳. 그동안 미술관 안 식당이나 카페는 대게 이런 의미로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카페와 레스토랑 가려고 일부러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먹거리·놀거리·배울거리, 그리고 쇼핑할 거리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 중심엔 먹거리가 있다.

세계적 트렌드 된 미술관 레스토랑

서울 원서동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먹으러 가는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표방한 곳이다. 미술관 바로 옆 5층 건물(위 사진)에는 각 층마다 다른 특징을 지닌 식당과 카페가 관람객을 맞는다. 맨 위층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 인 스페이스’(아래 사진)는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서 별 1개를 받았다.

서울 원서동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먹으러 가는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표방한 곳이다. 미술관 바로 옆 5층 건물(위 사진)에는 각 층마다 다른 특징을 지닌 식당과 카페가 관람객을 맞는다. 맨 위층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 인 스페이스’(아래 사진)는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서 별 1개를 받았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외식건물 5층에는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 인 스페이스’가 있다. 20여 개 좌석의 단출한 공간으로, 예약제로 운영하며 코스 메뉴만 가능하다.(점심 1인 6만원) 세계적 맛집 가이드북인 『2017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편』에서 별(1개)을 받은 인정받은 맛집이다. 아라리오 인 스페이스는 2014년 아라리오뮤지엄 개관 당시 바로 옆에 만든 외식 공간 건물이다. 각 층마다 프렌치·일식·이탈리안 식당이 자리해 있고, 1·2층은 카페다. 아라리오 뮤지엄 양민희 선임은 “원래 전시 관람객을 위한 외식 공간으로 기획했는데 막상 문을 열고보니 전시와 관계없이 들르는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굳이 전시장에 들르지 않아도 식당에 가면 꽤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통 창으로 건너다보이는 바로 옆 전시 공간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1931~86)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구)공간 사옥(등록문화제 제 586호)이다. 다른쪽 창에서는 전시 공간과 외식 공간을 잇는 유리 다리 전면에 설치한 영국 작가 리암 길릭의 네온 텍스트 작품이 보인다. 또 창 아래쪽으로는 2002년 지어진 건축가 이상림(공간그룹 대표)의 한옥 기와 지붕이 펼쳐진다. 너른 창으로 펼쳐진 창덕궁 풍경도 매력적이다. 외식 공간을 총괄하는 문정현 팀장은 “단순히 미술관 부대시설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뛰어난 경쟁력이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의 프렌치 레스토랑 ‘더 모던’을 참고했다”며 “미술관이라는 흥미로운 콘텐트를 외식 공간에 접목시켜 차별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미술관에 근사한 외식 공간을 꾸미는 건 해외에선 이미 일반적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는 미술관의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5층 ‘카페 캄파냐’와 2층의 ‘레스토랑 엘리앙스 오르세’다. 거대한 샹들리에와 화려한 벽화, 미술관이 기차역이던 시절부터 있던 커다란 벽시계 등이 어우러져 공간 자체가 작품처럼 느껴진다. 파리 퐁피두센터 6층 ‘르 조르주’와 팔레 드 도쿄 1층의 ‘무슈 블뢰’도 인기 있는 미술관 식당이다. 1891년 개관한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1층 카페 레스토랑도 유명하다. 르네상스 양식의 전형인 천장의 화려한 둥근 돔 바로 아래 있는데, 빈의 명물인 비엔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모마의 ‘더 모던’은 2016년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으로 승격(2006년 1스타 선정)됐고 2017년판에서도 2스타를 받았다. 음식도 물론 수준급이지만 창 너머로 피카소와 미로·마티스 등 세계적 작가들의 조각 공원이 펼쳐져 있다.

일본 나오시마 섬 베네세 하우스의 뮤지엄 레스토랑 전경. 벽면에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 작품이 걸려 있다.

일본 나오시마 섬 베네세 하우스의 뮤지엄 레스토랑 전경. 벽면에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 작품이 걸려 있다.

전시 공간과 호텔·레스토랑을 한 장소에 결합한 곳도 있다.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 섬의 베네세 하우스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베네세 하우스는 미술관에서 하룻밤 묵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엔 투숙객 라운지를 포함해 4개의 카페·레스토랑이 있다. 문 닫은 미술관을 가로질러 저녁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에 가면 앤디워홀의 ‘플라워스(1967)’와 이탈리아 유명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작품 등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취미는 전시회 관람』 저자인 한정희 대림미술관 총괄 실장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여름마다 옥상 공간에 루프탑(roof top) 바를 마련 한다”며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 옥상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라 늘 긴 줄이 설만큼 인기를 끈다”고 말했다.

전시+α가 필요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K현대미술관 1층에는 작품을 관람하면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층 전시 공간은 ‘로비스트 쇼’라는 이름으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바꿔가면서 소개한다. 벽면의 작품은 고명근의 ‘얼굴1’이다.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K현대미술관 1층에는 작품을 관람하면서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층 전시 공간은 ‘로비스트 쇼’라는 이름으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바꿔가면서 소개한다. 벽면의 작품은 고명근의 ‘얼굴1’이다.

“우리 경쟁상대는 영화관입니다.”

2016년 12월 강남구 학동사거리에 문을 연 K현대미술관 김연진 관장이 1월 11일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총면적 4300㎡(1300평)에 이르는 K현대미술관은 관객과 가까운 미술관을 표방하는 사립미술관이다. 매일 밤 10시까지 연중무휴다. 류소영 학예팀장은 “일부러 시간 내서 미술관에 가는 게 아니라 바쁜 일상 가운데 휴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들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특히 1층은 ‘로비스트 쇼’라는 큰 틀 아래 작품을 바꿔가며 소개하는 카페로 꾸며 누구나 쉽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보고 먹고 마시는 행위가 한 공간에서 가능하다. 물론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대림미술관 한 실장은 “영화·공연 등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비주얼 아트가 많은 시대에 미술관이 전시만으로 관객을 끄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미술관이 식당이나 카페 등 부대시설에 부쩍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미술관 수입을 올리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순 없다. 국제갤러리 대외협력팀 한옥조씨는 “갤러리나 미술관은 관람객 휴식용뿐만 아니라 관계자 미팅이나 컬렉터 교육, 파티 등의 목적으로 식음(F&B)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어차피 필요한 F&B 공간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관람료로 부족한 운영기금을 확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술대학원 김미진 교수는 “특별전을 제외하고 따로 관람료를 받지 않는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도 카페와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큰 규모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특별한 경험 선사하는 미식 공간

삼청동 PKM 갤러리 전경. 1층은 갤러리, 2층은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삼청동 PKM 갤러리 전경. 1층은 갤러리, 2층은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최근 속속 생기는 미술관·갤러리 속 식당과 카페는 전시공간과 별개로 그 자체가 ‘핫 플레이스’가 될 수 있도록 공 들여 만들어졌다.

PKM 갤러리 2층 ‘PKM 가든 카페’. 2층도 지상으로 연결돼 탁 트인 전망과 잔디 정원을 즐길 수 있다.

PKM 갤러리 2층 ‘PKM 가든 카페’. 2층도 지상으로 연결돼 탁 트인 전망과 잔디 정원을 즐길 수 있다.

굳이 전시 관람객이 아니어도 기꺼이 찾아가고 싶은 독립적인 공간으로서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는 얘기다. 삼청동 PKM 갤러리는 1월 20일 ‘PKM 가든 카페’를 오픈한다. 원래 컬렉터와의 미팅이나 전시 오프닝 파티 등을 목적으로 갤러리 2층(지상과 연결)에 마련한 공간인데 탁 트인 전망과 잔디 정원, 세련된 인테리어를 앞세워 일반에 공개하는 공간으로 재개장했다. 1층 갤러리를 통해 전시를 보고 올라와 음료와 식사를 즐겨도 좋고, 다른 입구로 들어와 식사만 즐겨도 괜찮다. 벽에 다양한 작품이 걸려있어 밥 먹으면서 작품 감상이 가능하다. 현재는 윤형근·전광영· 백현진·정희승 등 PKM 갤러리 전속 작가 작품이 걸려있다.

PKM 가든 카페’의 연어 샌드위치. 가볍게 즐기는 단품 식사뿐 아니라 코스 요리도 있다.

‘PKM 가든 카페’의 연어 샌드위치. 가볍게 즐기는 단품 식사뿐 아니라 코스 요리도 있다.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끼고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는 트렌드세터들이 드나드는 법”이라며 “작품 감상과 맛있는 식사라는 두 가지 강점 외에도 갤러리 특유의 여유롭고 조용한 분위기와 깔끔한 인테리어 등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삼청동 초입에 있는 국제 갤러리는 오래 전부터 이런 식공간을 잘 운영하는 갤러리로 정편이 나 있다. 1999년에 오픈한 갤러리 2층 ‘더 레스토랑’과 ‘더 와인바’, 1층의 ‘더 카페’ 등 총 세 개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는 전시 보러 왔다가 잠깐 들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레스토랑과 와인바는 전시와 상관없이 들르는 단골이 더 많다. 다이닝 공간 총괄 이종화 지배인은 “레스토랑에는 구본창 작가 사진작품이, 와인바 한 쪽 벽면에는 우순옥 작가의 비디오 아트가 설치되어 있다”며 “식사 중에 작품에 대해 묻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대외협력팀 한옥조씨는 “예술이라는 공통적인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들르는 공간이기 때문에 특유의 남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레스토랑도 콘텐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층 ‘빌 레스토랑’의 독립 룸 공간. 2013년 10월 배병우 작가의 개인전 당시 작가의 작품 ‘소나무’를 이 룸에도 전시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층 ‘빌 레스토랑’의 독립 룸 공간. 2013년 10월 배병우 작가의 개인전 당시 작가의 작품 ‘소나무’를 이 룸에도 전시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 1층 빌 레스토랑을 찾은 1월 11일 레스토랑이 분주했다. 가나 아트센터 홍보 담당자 김민경씨는 “오늘 저녁 예약된 모임 성격에 맞춰 벽에 걸린 그림을 교체하고 있다”며 “식사 하다가 작품에 관심 보이는 손님을 전시장으로 안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빌 레스토랑 역시 전시 관람객보다 식당을 따로 찾는 손님이 더 많다. 작품에 둘러 싸여 식사를 할 수 있어 품격을 따지는 모임 장소로 선호가 높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시 보는 김에 밥도 먹자’가 아니라 ‘미술관 가서 밥 먹자’인 셈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김미진 교수는 “미술관이 귀했던 과거와 달리 미술관이 워낙 많고 여가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전시공간뿐 아니라 백화점이나 놀이시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술관 속 식당이 관람객 부대시설을 넘어 그 공간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콘텐트가 되었다”고 말했다.

오는 4월까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 보물전’을 기념해 박물관 내 한식당 ‘마루’에 서 선보이는 ‘이집트 보물전 한정 코스요리.’

오는 4월까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 보물전’을 기념해 박물관 내 한식당 ‘마루’에 서 선보이는 ‘이집트 보물전 한정 코스요리.’

많은 전문가들은 단순히 식사 공간에 작품을 곁들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깊이 있게 작품 감상과 식사 경험이 부딪히고 섞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별관 1층 한식당 마루의 시도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식당에선 4월 9일까지 열리는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를 기념해 특별한 한정 코스메뉴(1인 3만5000원)를 선보이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활용되었던 병아리콩·렌틸콩 등의 식재료를 사용해 이집트 전통 음식인 팔레펠을 응용한 전병, 코프타를 재해석한 떡갈비 등을 메뉴로 내놓는다. 마루의 김미란 점장은 “2015년 폼페이 특별전을 할 때도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음식을 세팅하는 등 전시 내용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음식에 적용했다”며 “손님들이 전시를 보고나서 음식과 함께 관련 대화를 할 수 있어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전시 관람 중 마른 목과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간소한 카페테리아만으로도 충분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작품 관람이라는 시각적 자극은 물론 청각·후각·촉각·미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 미술관이 맛있게, 또 멋있게 변하는 이유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각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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