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외롭다’서 ‘맛있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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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부산에 사는 가정주부 권혜진(39)씨는 한 달에 한 번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밖에 나가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즐긴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육아 스트레스도 풀기 위해서다. 처음엔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 나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혼술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한다”며 “친구들도 ‘멋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년치 빅데이터 9억건 분석해보니
포털 등에 ‘혼술’ 언급 17배 증가
당당하게 마시는 혼술로 인식 변화

독신주의자인 회사원 김모형(36)씨는 혼술을 자주 한다. 남의 기분을 맞춰 주느라 진을 뺄 필요도 없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처음엔 ‘왕따냐’며 비아냥거렸지만 맛있게 요리를 만들어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이가 많아졌다. 김씨는 “내가 올린 SNS 사진을 보고 혼술하는 친구들이 꽤 늘었다”며 “요즘엔 경쟁적으로 혼술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놓고 혼술을 즐기는 이가 부쩍 늘었다. 혼술 커밍아웃이다. 광고업체 이노션의 빅데이터 분석조직인 디지털커맨드센터가 2015년 1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포털, 블로그·카페, 동호회 등의 소셜데이터 9억여 건을 분석한 결과 2016년 ‘혼술’ 키워드가 언급된 문서(글)는 7만5675건으로 전년(4486건) 대비 17배 늘었다. 특히 지난해 9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 방영 이후 ‘혼술’ 언급량이 빠르게 늘었다.

혼술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2016년 혼술 관련 감정 키워드 20개를 분석한 결과 ‘주변, 확인한다’ ‘지치다’ ‘외롭다’ 키워드 언급량은 전년 대비 각각 5.4%, 2.7%, 1.6% 줄었다. 반면 ‘맛있다’ ‘간편하다’ ‘추천하다’ 키워드는 같은 기간 각각 8.7%, 3.6%, 2.3% 늘었다. 주변을 의식하며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마시던 혼술이 맛을 즐기고 편하게 마시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혼술의 대세는 치맥이었다. 안주로는 치킨(3760건)이 가장 많았고 치즈(3476건)·과일(2566건)이 뒤를 이었다. 술은 맥주가 2만574건으로 2위 소주(6684건)의 3배 수준이다. 혼술은 주로 여행(5016건)·영화(4688건)·드라마(3427건)·음악(1793건) 등을 즐기면서 마시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노션 빅데이터 분석조직 커맨드센터의 최창원 부장은 “1인 가구의 증가로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어려움이 적어지면서 혼술을 즐기는 이가 늘었고, 혼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문화가 정착된 결과로 풀이된다”며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욜로(YOLO·한 번뿐인 인생)’가 올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혼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문화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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