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 빌려 치킨집 내기 어려워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자영업자 대출 심사 강화

“퇴직하면 치킨집 차려야 하나….”

과밀업종·지역 리스크 관리
금리 높이거나 한도 축소
소비 침체로 연체 증가 우려
임대용 집 구입도 대출 제한
“창업시장 되레 위축” 의견도

은퇴를 앞둔 회사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런 말, 앞으론 지역이나 업종에 따라 쉽게 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금융회사가 과밀업종·지역에 대한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해 대출 문턱을 높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경쟁이 심한 영역에 생계형 창업자가 지나치게 몰리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15일 금융위원회는 은행이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해줄 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정보를 참고하도록 여신심사 모형을 상반기 중 개편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은행이 자영업자에게 대출할 때 차주의 연체이력이나 연간 매출액 등만 이용해 대출심사를 한다. 앞으로는 ‘소상공인 전용 심사모형’에 따라 창업예정자가 가게를 내는 상권이 어딘지, 업종의 과밀도는 어떤지를 판단해 대출 조건에 반영할 방침이다. 과밀 지역이나 업종에 창업하려고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이 대출금리를 높이거나 대출한도를 줄이는 식으로 불이익을 준다.

어떤 업종과 지역이 과밀도가 높을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정보시스템(sg.sbiz.or.kr)’에 접속해 치킨집을 기준으로 과밀지수를 알아봤다. 서울 태평로1가의 경우 이미 8개 치킨집이 경쟁 중인 ‘초위험’(166.83포인트)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삼성1동은 ‘주의’(88.68포인트)에 그쳤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태평로1가에서 영업을 시작해 점포를 유지하려면 월평균 4786만원의 매출을 올려야 하지만 삼성1동에선 2359만원이면 된다는 분석이다.

새로 마련될 소상공인 심사 모형에 따르면 같은 프랜차이즈 치킨 집이더라도 태평로1가에 내면 삼성1동에 차릴 때보다 대출금리가 더 높게 책정된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희망 지역 인근에 동종업종이 이미 다수 영업 중이면 은행이 다른 지역에서 창업하거나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을 컨설팅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융위가 자영업자 대출 조이기 카드를 꺼낸 건 ‘자영업 공화국’의 대출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총 대출 규모는 464조5000억원(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율(11.2%)을 웃돈다. 아직까진 연체율이 낮지만(사업자대출 0.4%) 경기부진으로 소비심리가 급랭하고 있어 낙관하기 어렵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영세자영업을 중심으로 매출 부진이 심화할 수 있다”며 “자영업자 차주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창업컨설팅업체 FC전략연구소의 김중민 소장은 “빅데이터로 산출된 수치만 가지고 창업 적합성을 판단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며 “자칫 자영업자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창업의 성공 여부는 목이 좋으냐 아니냐 못지않게 개인의 자질과 준비 정도 같은 정성적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후 대비를 위해 임대수익용 오피스텔 등에 투자하는 것도 예전보다 까다로울 전망이다. 금융위가 부동산 임대업자 대출에도 ‘부분 분할상환’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부동산 임대업자의 사업자대출이 지난해 3분기 기준 21.6% 증가하는 등 자영업자 대출 증가세를 이끌고 있어서다.

그동안 일반 개인이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땐 처음부터 원금을 나눠 갚는 분할상환 방식이 적용됐다. 지난해 2월 은행권에서 시행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서다. 하지만 사업자대출엔 이러한 제한이 없었다. 금융위는 부동산 임대업자가 부동산을 담보로 사업자대출을 받으면 매년 원금의 30분의 1 이상을 상환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5.35%(전국 평균)다. 부분 분할상환 적용 시 원금의 3.33%를 매년 갚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체감 수익률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대출금리까지 감안하면 대출을 받아 임대사업에 나섰을 때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이 확 줄게 되는 셈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