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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인슐린, 당뇨병 마지막 치료로 생각 말고 언제든 맞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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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얼마 전 40대 후반의 당뇨 환자가 외래로 찾아왔다. 2년 전에 진단을 받고 직장 근처 병원에서 먹는 약으로 관리하다 최근 악화돼 대학병원을 찾은 것이다. 평균 혈당으로 알려진 당화혈색소는 7% 이내가 적절한데, 환자는 9%였다. 그래서 신속한 혈당 조절을 위해 인슐린 치료를 권했다. 환자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선뜻 해보겠다고 했다.

전문의 칼럼 │ 고대 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김신곤 교수

여러 편견 때문에 인슐린 주사를 쉽게 수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당수의 당뇨 환자는 “인슐린을 매일 주사하면 아프고 힘들지 않느냐”며 주저한다. 인슐린은 현존하는 당뇨병 치료제 중 혈당 강하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 또 개발 후 100년 가까이 사용한 약제다. 장기적 안전성도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용 비율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 당뇨 환자 중 20% 미만이 인슐린 치료를 받는다. 서양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필자는 국내 당뇨 환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두 가지 이상의 당뇨약을 먹어도 혈당 조절이 안 될 때 인슐린 처방을 받는 비율을 1년간 추적했다. 의사와 환자가 인슐린 사용을 꺼리는 요인도 각각 조사했다.

그 결과 인슐린 처방 비율은 20%에 그쳤고, 혈당이 매우 높거나 당뇨병 유병기간이 긴 환자만 인슐린 처방이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60세 이상의 고령층에 비해 40세 이하 연령층의 인슐린 치료 수용도가 2배 이상 높았다는 점이다. 고령층은 인슐린을 마지막 치료로 여기는 반면, 젊은 연령층은 혈당 조절을 위한 좋은 치료 중 하나로 인식한 것이다. 또 의사는 환자가 거절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인슐린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적으로 당화혈색소를 1% 낮추면 당뇨병 사망 위험이 21% 감소하고, 심장마비는 14%, 신부전이나 망막 병증과 같은 미세혈관 합병증은 37% 감소한다. 우리나라 당뇨 환자 4명 중 3명은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혈당 조절의 유력한 무기인 인슐린을 뒷전으로 밀어놔선 안 된다.
여러 연구를 통해 인슐린 치료의 유용성이 밝혀지고 있다. 대규모 연구(ORIGIN)에서는 초기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인슐린 치료를 했다. ‘조기 인슐린 요법’을 한 셈이다. 시작 당시 평균연령이 60대였던 연구 참여자들이 70대가 되도록 인슐린을 사용했지만 심혈관 질환이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없이 당화혈색소가 6.2%가 될 만큼 완벽하게 혈당을 조절했다. 연구 참여자 중 80% 이상이 인슐린 치료를 꾸준히 유지했고 만족도는 높았다.

최근에는 저혈당 위험을 더욱 줄인 차세대 인슐린이 개발됐다. 특히 인슐린 사용 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저혈당 위험을 보다 줄여 환자가 인슐린 치료를 편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펜 형의 인슐린도 많이 개선돼 주사라는 느낌이 안 들고 통증도 거의 없다. 이제는 당뇨 환자가 먼저 인슐린 치료를 문의하는 문화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인슐린에 대한 전국민적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인슐린은 중증 환자에게나 처방하는 마지막 치료가 아니라 적절하게 선택한다면 어느 때든 좋은 치료가 될 수 있다.

고대 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김신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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