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음의 허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4호 18면


지난해부터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애묘인의 삶을 살다보니 그들의 습성에 관심이 많아졌다. 하루는 고양이카페 회원인 아내가 게시판에서 본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고양이를 거둬서 키우기 시작한 사람의 질문이었다. 보통 고양이는 먹이를 주면 다 먹지 않고 적당히 나눠서 먹는데, 이 고양이는 먹이를 주면 바로 다 먹어치워서 행여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답변은 이랬다. 길고양이는 언제나 먹이를 구하기 어려웠기에, 자기 눈앞에 보이는 먹이는 아무리 많아도 일단 다 먹는 것이 생존의식으로 체화돼 있다. 이런 습관은 고양이가 이제는 안전하고 언제나 먹을 것이 공급된다는 안심을 해야 해결될 것이니 과식습성은 좀 기다려보라는 것이다.


비단 고양이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듯싶다. 현대사회는 과식과 전쟁 중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맛있는 것의 유혹에 넘어가 배가 터지게 먹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기 일쑤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 보고에 따르면 1960년대 미국인의 하루 칼로리 섭취량은 약 2200kcal였는데 2000년에는 평균 2700kcal로 증가했다. 그 결과는 비만이다. 한국도 건강보험공단 검진 자료에 따르면 수진자 중 24%가 과체중, 30%가 비만으로 평가되었다. 모두가 칼로리 걱정을 하지만 여전히 과식은 반복된다.


이를 문화심리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데, 미국 워싱턴대학의 키마 카길이 쓴 『과식의 심리학』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과거에는 내가 생산을 하는 것으로 나를 규정했다면 이제는 내가 소비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소비는 미덕이 되었고, 빠르고 즉흥적인 소비를 하는 사회로 전환되는 속도만큼 많은 것을 먹고 빨리 먹게 되었다. 더욱이 미디어에는 맛집소개, 먹방이 채널마다 나온다. 이 정도는 먹어야하는 것 같고, 저 정도 먹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아져 버렸다. 필요 이상으로 먹고 소비하지만 만족은 금방 사라지고 또 먹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과식이 심리적 허기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길고양이가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먹어치우듯이 지금 사람들은 내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론적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해 먹고 또 먹는다. 자아는 어딘가 비어있다는 본능적 인식을 갖게 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구매하거나 더 즉물적으로는 먹고 마시는 행위를 한다. 당장은 뭔가 채워진 듯한 만족감이 들지만 곧 사라져버리고, 더 많이 자주 먹고 싶은 욕망의 사이클만 반복된다.


이런 기제가 작동하는 한 칼로리와의 전쟁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상을 위해 달고 기름진 것을 많이 먹고 싶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길냥이가 이제는 안전하다는 안심을 해야 과식을 멈추듯이, 현대인의 과식습성은 인위적 칼로리 제한이 아니라 삶의 안정성을 확보한 다음에야 비로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