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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시장을 돌아보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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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18면


2016년 주식시장의 마지막 거래가 마감되는 날 나도 모르게 긴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해 내내 정말 도깨비같은 시장이었어.”


도깨비가 서에 번쩍 동에 번쩍 하듯이 대형 사건 사고들이 뻥뻥 터져 나왔다. 굵직한 걸로만 한번 꼽아보자.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고 중국이 사드(THAAD) 배치에 격렬히 반대했으며 정치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고 최순실은 대통령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했으며 그 결과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모두 주식시장에 단기적인 충격을 줬을 뿐 아니라 주도주와 시장전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를 기업들에게 취하자 인기절정을 달리던 중국 소비 관련주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로 반전됐다. 또 트럼프가 당선되자 그의 초대형 인프라 투자 계획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증폭됐다.

[예상치 못한 이슈에 대한 시장 내성 강해져]
시장의 예측이 대부분 빗나갔다는 점에서도 도깨비 같았다 하겠다. 2016년 벽두의 주인공은 제약·바이오였다. 하지만 이들은 최악의 주식이란 오명으로 한 해를 마감했다. 오히려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은 현대중공업·포스코·롯데케미칼·하나금융지주 등 전망이 없어 보이는 전통업종에 속한 대형주들이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필자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대형 경기순환주의 상승반전 시기를 맞추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제약·바이오·화장품 등은 당시 고평가임이 명백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북적거린다는 신호가 많아서 욕심에 눈이 멀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신약 계약파기, 중국의 조치 등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평가주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기는 어떤 모습으로 언제든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올해의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이 워낙 뒤숭숭하다 보니(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도깨비 같은 일은 올해도 줄을 이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충격은 덜할 것이라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잦은 이슈의 출몰로 인해 시장이 이에 대한 내성이 생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가 혼란한 시기였다 하지만 코스피지수 1900선 이하는 잘 내주지 않았다. 올해는 하단이 좀더 위쪽일 것이다. 둘째, 조선·해운 등 한계기업의 정리가 상당히 진행된 가운데 살아남은 기업들의 이익 추세가 조금씩이나마 우상향하고 있다. 강도가 약할지라도 인플레이션은 어쨌든 전반적인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되는 법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형 경기순환주가 주목받은 데다가 시장 영향력이 절대적인 초대형주인 삼성전자가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보니 모두의 시선이 대형주 쪽을 향해있다. 하지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돈 또한 더 높은 기대수익을 따라 움직인다. 먼저 움직인 대형주가 더 올라갈 자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상승여력이 남은 쪽을 찾아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대형주는 이미 상승이 상당히 진행됐고 중소형 성장주는 크게 빠졌다 해도 여전히 비싼데다 모멘텀이 사라졌다. 최근 3년간 고평가주에 치이고 대형주에 치인 중소형 가치주가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뒤로 하고 매력을 뽐낼 때가 왔다. 2016년의 반전 주인공이 대형 경기순환주였다면 2017년 반전의 주인공은 중소형 가치주일 거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창궐할 대선 테마주 눈길도 주지 말아야]
기업들이 가진 자산도 주목해야 한다. 저금리가 지배하는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보유 자산이 창출하는 가치가 적다. 하지만 금리가 올라가면 보유현금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당연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유형자산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것이 순리다.


2017년은 디플레이션 시대의 소외주였던 자산주가 새롭게 조명 받게될지 모른다.가장 걱정되는 건 대선 테마주의 창궐이다. 언제 시작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올해 대선이 있어 이를 이벤트 삼아 각종 개미지옥이 열릴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대선 테마주의 말로가 어땠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불로소득의 욕심을 버리자. 주식시장은 홀짝게임 하는 곳이 아니라 기업의 소유권을 거래하는 곳이다.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는 “퍽이 있는 곳으로 가지 말고 퍽이 굴러가는 곳으로 가라”고 자신의 성공 비결을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수익창출의 기회는 모두의 시선이 쏠린 곳에 있지 않다. 그리고 지난해 제약·바이오 버블의 붕괴에서 목격한 것처럼 공짜 치즈는 오직 쥐덫에만 있다. 이 두 가지 입에 쓴 충고만 기억한다면 올해 시장이 아무리 도깨비 같더라도 최소한 큰 손해는 피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준철VIP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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