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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오바마의 ‘Yes you can’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3호 18면

? VIP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한 편의 드라마같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말입니다. 엊그제 시카고에서 열린 오바마의 마지막 연설은 군중을 움직이게 하는 정치인의 힘이 연설에서 나온다는 걸 증명해보인 살아있는 정치학 교과서였습니다.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 일인데도,가슴 저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동이 피어오를 정도니 과연 연설의 달인이다 싶더군요. 한편으론 우리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를 미국 대통령 연설로 대리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 오바마는 지난 8년간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에 대한 감사 인사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나를 정직하게 이끌었고 내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매일 여러분들로부터 배운다. 여러분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좀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Every day,I learned from you.You made me a better president and you made me a better man)"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으로 늘어난 일자리,올라간 성장률,쿠바와의 재수교 등을 열거해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낸 뒤 "바로 이 일을 해낸건 여러분들이다. 여러분들이 바로 변화 그 자체다. 미국이 더 좋은 나라,더 강한 나라가 된 건 여러분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연설 말미에는 "내가 여러분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건 내 생애의 영광이었다"며 "내가 여러분의 대통령으로서 하고싶은 마지막 부탁은 8년전 여러분이 내게 소임을 맡겼을 때 했던 바로 그 말,즉 변화를 이뤄내는 건 내가 아니라 여러분의 능력이란 확신을 가져달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할 수 있다.해냈다(Yes we can,Yes we did)"를 외치자 장내는 온통 "Yes we can" 함성의 도가니가 됐습니다. 청중과 하나가 돼 "Yes we can"을 외치는 장면은 가슴 떨리는 전율이며 신비한 체험이었습니다.? 오바마 연설의 매력은 청중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감성을 자극하는 마력과 같은 언어 선택에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란 무엇입니까. 철학과 세계관의 반영입니다. 인식의 수준과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는게 말입니다. 오바마가 자신과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가 말 속에 스며있습니다.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군림하는 자와 통치받는 대상이라는 갇힌 틀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호흡하는 호혜적 관계,그래서 서로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공생적 관계입니다. 상호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메시지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연스럽게 용해되며 혼연일체를 이끌어냅니다."Yes we can"의 함성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살아 숨쉬며 약동하는 생명체의 힘을 갖게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민중을 '개,돼지'로 여기는 저급한 인식과 철학 부재의 리더십에선 기대할 수 없는 것이죠.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는 한 아무리 '할 수 있다'를 외쳐도 그건 레토릭에 불과할 뿐이란 걸 그동안 무수히 목도해오지 않았습니까. ? 오바마는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극대화하는 낡은 수법을 외면합니다. 대신 분노를 긍정의 에너지로 이끌어낼 줄 아는 영리함과 설득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우리의 헌법은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선물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참여와 선택으로 국민들이 힘을 불어넣지 않으면 헌법은 한낱 종이쪽에 불과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시민들이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일에 적극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이보다 더 명쾌하고 극적이고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 아내 미셸 오바마를 치하하는 대목은 가슴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남편으로서,아빠로서 8년 세월을 잘 견뎌낸 가족에게 보낸 찬사마저도 멋들어지고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는 미셸에 대해 "아내이자 엄마일뿐 아니라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소개한뒤 "당신은 자신이 선택하지도,원하지도 않았던 역할을 (나를 위해) 우아하고 고상하게,훌륭한 유머로 해냈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든 사람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다. 젊은이들이 인생의 목표치를 더 높게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당신이 롤 모델을 훌륭히 해줬기 때문 (You took on a role you didn't ask and made it your own with grace and grit and style and good humor.You made the White House a place that belongs to everybody. And a new generation sets its sights higher because it has you as a role model) "이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 청중석 맨 앞줄에 앉은 "미셸"의 이름을 부른뒤 감정이 벅차오는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슬쩍 눈물을 훔친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콧끝이 찡해오면서 한줄기 액체가 흘러내리더군요. 언론들도 거의 대부분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보도했더군요. 화려한 천마디의 말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긴,오래토록 잊지 못할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 부창부수라 했던가요-.이보다 며칠전에 있었던 미셸의 고별연설도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전국의 상담교사들을 백악관으로 부른 자리여서,참석자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미셸은 여성들의 롤 모델을 자처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퍼스트레이디였기를 바랍니다…여러분,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누구도 여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여러분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세요.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요. 여러분이,부모님이 돈이 많지 않다고 불평하지도 마세요. 남편과 저도 처음에 아주 작게 시작했답니다.…용기를 가지세요.남은 여생을 저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일을 할테니까요."?? 남의 나라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자니 좀 민망하지만,이렇게나마 대리 만족으로 갈증을 채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원망할 수밖에요. 곧 말의 성찬이 벌어지는 선거 시즌이 도래합니다. 대선에 나오려는 예비 후보들이 줄잡아 10명은 넘어보입니다. 이번 대선만큼은 철학 부재의,쓰레기나 다름없는 저속한 혀의 전쟁이 아니라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명연설의 경연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터무니없는 헛된 소망이라고요?


?? #유전결혼(有錢結婚) 무전비혼(無錢非婚) ? 이번주 중앙SUNDAY는 저출산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결혼율 저하의 원인을 짚어보는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20~30대의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결혼이 소득수준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게 드러났습니다. 여성은 소득과 상관없이 비슷한 감소 추세를 보인 반면 남성은 고소득자에 비해 저소득자의 결혼이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소득 5분위 이하의 기혼율은 50%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가난한 사람 중 절반은 결혼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 전문가들은 “상층의 남녀만 결혼하고 중·하층은 가족이 붕괴하고 있다"며 "계급간 장벽이 공고해지면 생산력 재생산 단절은 물론 계급 간 장벽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봉건사회로의 퇴행”이라고 경고합니다. 더 나은 한국,리셋 코리아를 위해 무전비혼(無錢非婚) 의 고리를 끊는 대책 마련은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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