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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종자닭 농장’을 지켜라…이웃 주민, 키우던 닭 자발적 살처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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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원종계농장 계사(鷄舍) 내부. 농장과 방역 당국은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해 방역을 강화하고 외부인과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한국양계TS]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원종계농장 계사(鷄舍) 내부. 농장과 방역 당국은 조류인플루엔자(AI)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해 방역을 강화하고 외부인과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한국양계TS]

지난 9일 오전 10시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오서산 입구.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도로를 따라 300m가량을 걸어서 올라가자 진입 금지를 알리는 안전봉이 설치돼 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를 차단하기 위해 농장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통제한 것이다. 300~400m를 더 올라가면 국내 유일의 원종계농장(한국양계TS)이 위치해 있다. 원종계(原種鷄)란 상업적으로 닭을 양산하기 위해 종계 생산에 이용하는 순수 계통의 닭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종자닭’으로 불리는 원종계는 알을 낳는 ‘산란계의 할머니’쯤 되는 닭이다.

AI 차단 비상 홍성 농장 가보니
“원종계는 알 낳는 닭의 할머니뻘”
한 마리가 산란계 4500마리 생산
농장 감염 땐 양계산업 회복 힘들어
철새 못 오게 10㎞ 밖 볍씨 뿌려 유인

홍성의 이 농장에서는 원종계 2만4693마리를 키우고 있다. 9주령(週齡), 53주령이 절반씩이다. 농장은 매년 두 차례 미국에서 병아리를 들여온다. 이 병아리가 원종계다. 원종계는 150일쯤 자란 뒤 초란을 생산한다. 이 알에서 부화한 병아리가 전국 10곳의 산란종계 농장으로 출하된다. 병아리는 산란종계 농장에서 150일 정도 자란 뒤 알을 낳는다. 여기에서 부화한 병아리가 산란계농장으로 옮겨져 150일이 지나면 비로소 계란을 생산하게 된다. 병아리를 수입해 계란이 식탁에 오를 때까지 450일이나 걸린다. 원종계농장이 중요한 이유다. 농장에서는 매년 40만 마리의 병아리를 출하한다. 국내 산란종계 유통물량의 65~70%를 차지한다.

양계업계에 따르면 원종계 한 마리가 산란종계 50마리 정도를 낳고 산란종계 한 마리가 80~90마리의 산란계를 생산한다. 원종계 한 마리가 4000~4500마리의 산란계를 생산하기 때문에 파급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방역 당국이 원종계농장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국 산란계의 30%가량을 살처분한 상황에서 이 농장마저 AI에 감염되면 양계산업이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충남도와 홍성군은 지난해 12월 초 농장 입구에 거점소독시설을 설치하고 반경 3㎞ 이내 소규모 농가 20곳의 가금류 226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지난 9일부터는 광역살포기와 군부대의 제독차량까지 동원해 주요 도로 진입로와 인근 지역을 매일 깨끗이 소독하고 있다. 원종계농장과 가까운 산란계농장 4곳은 AI가 종식될 때까지 새로 닭을 들여와 키우지 못하게 했다. 철새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약 10㎞ 떨어진 천수만 주변에 볍씨 3t을 뿌렸다. 철새를 원종계농장에서 가급적 멀리 유인하기 위해서다.

원종계농장 관계자는 “직원들이 계사(鷄舍)로 들어가려면 철저히 소독하고 샤워까지 한 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지난 7일에도 전북 장수의 농장으로 병아리를 출하했는데 모든 직원에게 비상이 걸릴 정도로 긴장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모두 14곳의 산란종계 농장이 있는데 이 중에서 경기도 지역 농장 5곳에서 AI가 발생해 이미 살처분했다.

이처럼 원종계농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담산리 주민들도 AI 예방에 동참하고 나섰다. 소규모로 키우던 닭과 오리를 자발적으로 살처분했다. 국가적으로 소중한 원종계농장을 함께 지키자는 취지에서다. 주민 김경하(56)씨는 “(농장) 직원들이 고생하는데 이곳이 감염되면 큰일 난다. 주민들이 농장으로 올라가는 도로 근처에는 가지도 않을 만큼 알아서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종계농장 반경 3㎞ 이내에서는 가금류 사육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제2의 원종계농장을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민간이 운영하는 농장이라도 산란계산업의 기반이기 때문에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며 “환경을 더 개선하는 데도 관계기관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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