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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권에 찢긴 민심으로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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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중국·일본·북한이 한국을 먹잇감처럼 여기고 달려드는 고립무원, 내우외환의 시기다. 대권주자들에 휘둘려 이리저리 찢긴 민심으로 나라를 구출할 수 없다. 폭력과 협박, ‘닥치고 집권병(病)’에 들떠 치러진 대선은 차기 대통령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대권보다 중요한 게 나라를 고이 보전하는 일이라는 엄중한 인식을 모두 가져야 할 때다.

강대국들의 먹잇감 신세 된 한국
반기문·문재인 진영 세 대결 조짐
박사모까지 가세 혼탁·폭력 우려

 이번 주 귀국과 함께 초반 기세를 과시하려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측과 기선을 제압하려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의 신경전과 세 대결 조짐이 심상찮다. 정치권의 각 대선주자 진영은 이달 말 설 연휴 귀성이 시작되기까지 20여 일이 대선 승부가 가려지는 시기로 보고 총력전을 벌일 태세다. 승리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언행의 분출을 경계해야 한다.

 반기문 진영은 대선 출마 선언조차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수많은 대중 조직이 선거판 저변을 누비고 있다. 여의도엔 지난해 말 김종필·고건·정운찬 전 총리의 이름을 도용해 당사자들의 항의를 받고 잠시 수그러들었던 자칭 ‘반기문 대통령 추대위원회’라는 유령단체가 수십 평 사무실을 차려놓고 다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전형적인 불법 유사(類似) 사조직이나 선거 브로커 혐의가 있는 만큼 중앙선관위나 검경의 단속이 요구된다. 여당의 읍·면·동 단위 하부 조직 신년회엔 반기문 진영의 간부라며 완장 찬 듯이 행세하는 사람들이 인사를 받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고 한다. 이런 사정이니 출마 선언도 안 한 반 전 총장을 위해 “우리가 경호를 맡겠다”는 눈살 찌푸려지는 경쟁도 연출되는 것이다.

 문재인 진영이 온라인상에서 집단적이고 집중적인 문자 폭력을 행사해 공포·협박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엔 당내 경쟁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하자 친문 전투원들이 떼거리로 달려들고 있다. “정권 교체 열망을 하루아침에 패대기치고 궁물당(국민의당)이나 개보수당(바른정당)으로 들어가야 할 인간. 배신 정치의 아이콘이 되려나”는 댓글을 다는 식이다. 정치를 더 좋은 선택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없애야 할 적과 싸우는 전쟁으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문재인과 문재인의 집권만 선이고 다른 집단은 모두 악이라는 이분법적·전체주의적 태도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법과 질서와 상식을 무시하고 힘으로 모든 것을 관철할 수 있다는 이런 유의 패권적 정치문화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문재인 진영이 승리하더라도 집권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지지 세력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보다 더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의기양양한 모양이다. 엊그제 구미시청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표의 차량을 수백 명이 에워싸고 “빨갱이” “간첩 잡아라”고 소리치며 공격을 해댔다. 탄핵 절차가 진행될수록 집단 상실감이 깊어질 박사모 등이 어떤 돌발적 행동을 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