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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실체 확인된 블랙리스트, 수사로 진실 밝혀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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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이 9일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이날 국회 7차 청문회에 출석한 그는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고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청문회에선 “그런 문서를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해 위증 혐의로 특검에 고발됐다. 그랬던 조 장관이 마침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으니 주목할 만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인 1만 명을 문예진흥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된 명단이다. 2014년 6월 이 문서를 봤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로 처음 실체가 드러났다. 그러나 김 전 실장 등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아온 인사들이 모르쇠로 버티는 바람에 의혹만 눈덩이처럼 커져 왔다. 하지만 9일 조 장관의 증언을 통해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된 만큼 특검은 수사에 박차를 가해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는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뒤 교문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에 전달됐다. 국가정보원도 작성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관련 기관이 총동원돼 만들어진 문건의 존재를 박 대통령이 몰랐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특검에 따르면 최순실씨도 “정권에 비판적인 예술인들을 관리해야 한다”며 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의혹이 포착됐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당도 블랙리스트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진보 성향 예술인들에게 지원이 집중돼 논란이 끊이지 않지 않았는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념을 기준으로 예술인들을 편 가르는 구태는 지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