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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국과 세태를 적나라하게 다룬 시조집 출간

중앙일보

입력

대구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프리랜서 공정식

직접적이고 해학적으로 시국과 세태를 적나라하게 다룬 시조집이 나왔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강호(57) 시조시인의 『참, 좋은 대통령』(동학사)이다.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표기했지만 실제 시조집 책등에 인쇄된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거꾸로 인쇄돼 있다. 2007년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한 것을 비튼 것이다. '좋은'이 거꾸로 서면 '나쁜'이라는 뜻 아닌가. 나쁜 짓은 골라서 한 듯한 대통령을 그의 과거 발언을 비틀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시조집에는 '시인 김강호의 웃픈 대한민국 3장6구 민낯 시집'이라는 부제도 붙여 놨다. 부제까지 한 몫 해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시조집은 철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태 비판적이고 그러면서도 해학적이다.

'촛불집회'라는 제목의 단시조는 다음과 같다. 전문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 야윈 어깨 맞대고// 갇혔던/ 울분들을/ 촛불로 피우고 있다// 인왕산/ 봉우리 보다 높게/ 불빛 첩첩/ 함성 첩첩'.

'후회'라는 단시조 작품 역시 대통령 발언을 비틀었다.

'"내가 이러려고/ 그녀에게 투표했나?"//알량한 양심 접고/ 도장 꾹 누른 손을// 단박에/ 자르고 싶어/ 절규하는/ 광장'.

탄핵소추를 가능케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방송사 'JTBC'가 제목인 작품도 있다.

'단두대 아래서 조여오는 압박감을// 기어이 떨쳐내고 전조등을 밝히자// 어둠이 무너져 내린다 민심이 폭발한다'.

'블랙리스트'라는 제목의 작품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

'희디흰/ 목련꽃을/ 송두리째/ 꺾어버린// 세상 맑힐/ 음반에/ 코뚜레/ 묶어 놓은// 시그널,/ 환장할 세상/ 지직-거리며/ 잘도 돈다'.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보도를 한 일본 산케이신문에 대해서는 아무리 잘못 했어도 한국 대통령을 문제 삼지 말라는, 양가감정을 드러낸다.

'"지덜이나 잘하지 남일 가꼬 지랄여? 어디서 일곱 시간 죽을 쒀도 우리 대통령이여! 아베나 잘하라고 혀! 왜 남 나라에 지랄여?"'. '산케이 신문에 대한 아주머니의 일갈'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감정노동자'는 요즘 이슈와는 별 상관 없는 '세태 시조'다.

'비울 것/ 다 비워서/ 이젠 더/ 비울 것 없다// 속 창시/ 긁어내고/ 웃고 있는/ 목어처럼// 오늘도/ 풍랑 앞에서/ 눈물겹게/ 반짝인다'.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시인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시조가 소개돼 있다.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고, 시조집 『아버지』『팽목항 편지』『군함도』 등을 냈다.

시조집 '서문'을 다음과 같이 썼다.

'선명하게 새겨지는 역사의 복판에서 촛불을 든 232만 명의 민중이 소리쳐 묻고 있다. "이게 나라냐?"'.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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