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30년, 다시 민주주의를 묻다

중앙일보

입력 2017.01.09 02:33

업데이트 2017.01.0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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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89세 아버지 박정기씨가 본 1987년 & 2017년

백발의 89세 노인은 30년 전 딴 세상으로 떠난 아들 얘기를 하면서 물기 없는 마른 눈가를 자꾸 휴지로 닦았다. “(내가) 병이 하나 있거든. 사람이 마음이 안 좋고 하면 눈물이 나오고 슬프고 해야 되는데, 눈물이 밖으로는 잘 안 나와. 안으로 들어가버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 박정기씨가 부산 집에서 아들을 회상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아버지 박정기씨가 부산 집에서 아들을 회상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그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철(당시 23세)씨가 숨진 일을 말한다. 경찰의 은폐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지킨 의사, 의로운 기자, 용기 있는 사제 등이 박씨가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시민들의 분노는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87년 체제’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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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종철씨 30주기를 여드레 앞둔 지난 6일 부산에서 부친 박정기씨를 만났다. 고령인 데다 최근 건강이 나빠져 걸음도 말도 편치 않았 지만 아들에 대한 기억은 선명했다. 그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얘기했다.

“87년에 독재 무너졌는데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정치인
평화 촛불집회 아름답더라
아들의 착한 뜻 이뤄질 것”
6월 항쟁이 만든 ‘87년 체제’
제왕적 권력구조 한계 봉착
학계 “광장 요구, 제도 수렴을”

“철이는 삼남매에서 막내로 태어났는데, 참 좋더라고. 자랄 때도 절대로 친구들캉 싸우거나 안 하고. 사귀기를 좋아했어. 어릴 때부터 대학까지 친구라카는 애들은 우리 집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티 없이 자랐어.”

그가 애지중지한 막내는 경찰의 고문으로 생을 마감했다. 박씨에겐 3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아들 생각? 생각이야 많이 있지. 이맘때고 저맘때고 생각은 똑같지. 말은 잘 안 해. 가족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1년에 한두 번 (아들 얘기를 할 상황을) 맞닥뜨리는데 서로 이야기를 돌릴라카지.”

그는 54년 부산시 수도국에 들어간 뒤 87년 예순이 될 때까지 공무원으로 살았다. 그러다 아들 사망 다음해에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부회장을 맡았고 이후 회장과 고문을 거치며 활동했다. 그는 아들이 품었던 가치들을 ‘착한 뜻’이라고 표현했다. “제일 아쉬운 게 (아들이 품었던 생각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못하게 된 것이야. 아쉽고 외로울 때가 있어.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참고 기다리자. 그 선배, 동료, 후배들이 아들의 착한 뜻을 언젠가는 펼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지.”

고 박종철씨가 1987년 고문으로 숨진 장소인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재 박종철기념). [사진 송봉근 기자]

고 박종철씨가 1987년 고문으로 숨진 장소인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재 박종철기념). [사진 송봉근 기자]

박종철씨의 친구들로 꾸려진 ‘박종철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는 14일 오후 부산시 중구 광복로에서 기념음악회 및 사진 전시회를 연다. 최근 촛불집회에선 30주년을 맞는 박종철 사건이 현실로 자주 불려온다. 박씨 부친도 아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된 민주화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말했다. “뉴스에 학생들 나오는 거 보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나지. (평화롭게) 잘 따라가고 하는 게 아주 아름답게 보였어. 힘이 들고 어려워도 같이 움직여주는 것이 아름다운 민주화를 가져오지. 그런데 87년 민주화 운동이 끝내는 아름답지 못한 형태로 지금 나타나는 것 같아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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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화난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민들은 권력에 의한 폭력,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에 분노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반복되는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관련된 권력구조의 문제와 민심 반영을 제대로 못하는 정치시스템에 있다. 지금은 광장에서 분출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수렴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박종철 사건이 2017년에 다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박씨 아버지는 그렇다고 답한다.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그런 일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그 주체(시민들)의 마음이 단단해야 돼. 마음이 단단하면 성공할 수 있어.”

◆특별취재팀=한영익·윤정민·김민관·윤재영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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