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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아이들의 운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3호 18면


키158cm, 체중 72kg인 중2 여자아이가 간기능 이상, 높은 혈당, 혈압 등의 문제가 있다는 얘기에 아이 엄마가 놀란듯한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운동이 필요하다는 조언에 “중학생이 어떻게 운동을 해요” 라며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보듯 나를 쳐다본다. 아이 일정에 맞춰 운동할 틈을 찾아보려고 진료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일정을 점검하지만, 학원 일정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체중조절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음에도, 학원 일정에 쫓겨 다음 진료 예약조차 잡기 힘들다.


건강한 체중 유지를 위해 아이들은 매일 하루 1시간 이상의 약간 힘이 드는 신체활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습관화 되려면 우선 재밌어야 한다. 어린 시절 활동이나 운동이 즐겁다는 기억이 있으면 어른이 돼서도 그런 활동이나 운동에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요즘엔 줄넘기도 학원을 다닌다며 혀를 차는 어르신들을 본다. 수행평가를 받아 등급을 매기니 ‘줄넘기=수행평가’로 이어지게 될 경험이 아이들에게 줄넘기란 운동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의문이다. 아이들에게 운동이나 활동이 즐겁고 신나는 기억으로 이어지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학생시절 나는 소위 ‘체포자 (체육을 포기한 사람)’였다. 특정 운동 동작 수행을 평가하던 체육 시간, 뜀틀은 중간에 걸터앉았고, 철봉은 손을 떼기가 무서웠다. 묘기에 가까운 소질을 보이는 친구들은 나와는 딴 세상 사람이었다. 잘하고 좋아하는 운동이 있긴 했지만, 내겐 체육시간이 제일 괴로웠다. 소아청소년 비만 진료와 연구를 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체육을 즐겁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노력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뵀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요즘의 놀이체육과 같은 개념이 있었다면 나 역시 체육시간을 그리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레저산업이 발달하면서 운동 콘텐트는 많아졌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빠 할 수가 없다. 고학년이 되면 학업 일정이 빡빡하니 예체능은 초등학교 때 다 끝내고 선행학습에 치중해야 한다는 엄마들도 있다. 어릴 때 운동을 많이 하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학원 일정 때문에 운동을 중단하고 체중이 많이 늘게 되어 오는 청소년 환자도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각종 국가 통계치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다.


한국 청소년 중, 하루 1시간 이상 중등도 이상의 신체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7명 중 1명 정도다. 중·고교를 거치며 그 비율은 더 낮아진다. 특히 여학생은 남학생 신체활동의 3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은 야구·농구·축구 등 몸을 많이 쓰며 할 만한 운동거리가 꽤 있지만, 여자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 동영상으로 아이돌 댄스를 따라하거나 가상 운동경기 같은 앱들을 써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짧은 여유시간에라도 뭔가 할만한 재미난 활동거리가 없어서 많이 아쉽다. 진료실에서 운동이나 신체활동을 권하는 나조차도 막막한 심정은 같다. 과연 뭣이 중한가를 다시 생각해 볼 때다.


박경희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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