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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안정적 관리 위한 ‘비핵 상생’ 병행정책 대전환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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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14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를 언급했다. 자칫하면 한반도 정세가 엄청난 군사적 긴장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 속에서 남한 정치의 불안정성이 남북 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동북아 정세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중 관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習近平) 지도부 간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에서 주목할 것은 전반적으로 집권 6년 차를 맞아 ‘김정은표’ 대외관계, 경제정책, 대남정책 등을 펼쳐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김정은 자신의 육성으로 트럼프를 향해 ICBM 시험발사 준비가 마감 단계라고 밝힌 것이다. 이 언급은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압박 기조로 정리될 경우 올해 안에 ICBM급 로켓 발사 실험을 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대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전술로도 보인다.


김정은은 ICBM급 로켓 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트럼프가 대화에 나서면 카드를 집어넣고, 압박으로 나오면 카드를 쓰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언제든지 ICBM 카드를 꺼내고, 핵 능력 고도화 완성을 선언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트럼프 정부에 밀리지 않고, 시진핑 지도부에도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김정은은 7차 노동당대회 이후 당 중심으로 체제를 이끌고 간다는 기조를 확인했다. 당을 중심으로 ‘인민생활’ 개선 등 경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김정은의 자아비판 발언에 묻어났다. 김정은은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김일성·김정일 때도 없던 ‘자아비판’이었다.


김정은 자신이 최종적으로 손을 본 것으로 판단되는 이 발언 내용은 수령의 무오류성이 절대적인 북한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김정은은 자신의 통치 기반이 충분히 안정됐다는 자신감 속에서 몸을 낮추는 것이 아래로부터 주민들의 지지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더 크게는 당, 내각, 군의 고급 관료와 군인들의 무한 충성을 유도하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나도 반성하고 있는데 너희도 반성해라.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책벌이 가해질 것이다’라는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이다.


한국의 탄핵 국면을 틈타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신년사에 표출됐다. 지난 5년간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 중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 실명이 언급됐다. 탄핵 국면을 최대한 활용해 ‘남남갈등’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미 동맹에 대한 비난 수위도 여전했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상반기엔 ICBM 발사 자제할 듯]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감안한다면 김정은의 신년사로 본 올해 한반도 정세는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관계는 불안정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가 대 한반도, 북핵 정책의 가닥을 잡을 상반기까지는 김정은이 ICBM 시험발사를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반기에 트럼프 정부가 강경 기조로 대북정책을 확정할 경우 김정은은 하반기께 ICBM 시험발사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 한반도가 가히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당장 한국 정부의 2017년 대북정책의 화두는 정세의 ‘안정적 관리’여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을 최대한 활용해 북한의 ICBM 시험발사를 자제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와의 정부 간 고위급 대화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목표로 충분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시진핑 지도부와도 북한의 행동을 중지시키기 위한 충분한 대화가 요구된다. 올 상반기 탄핵 국면에서 대남 저강도 군사적 무력시위가 없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도 한·미·중 3국의 적극적인 공조 속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북정책의 틀이 모색될 시점이 됐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대외정책이 한반도 내외의 중장기 정세를 반영해 제시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대북 포용정책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에 포박되지 않고, 그것들을 아우르면서 극복하는 정책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에 굳건히 기반하면서 실현 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이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마디로 ‘비핵 상생 병행정책’으로 명명돼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는 북핵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화와 상생의 교류협력을 병행하는 정책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이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는 명확하게 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핵포기를 할 경우 이를 전제로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높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핵포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정책이었다.


‘비핵 상생 병행정책’은 비핵과 상생의 선후를 따로 정하지 않는다. 비핵화를 목표로 두고 상호 대화와 교류 협력을 병행하는 정책이다. 여기서 상생은 비핵을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비핵 과정 역시 상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상생과 비핵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 그것이 ‘비핵 상생 병행정책’의 본질이다.


여기서 비핵화를 목표로 둔다는 것은 비핵화 자체를 목표로 하면서 당장은 북핵의 고도화 중단과 비확산을 우선으로 하고 이것들이 달성된 후 비핵화를 실현시킨다는 단계적 접근법을 말한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는 거의 달성됐다고 본다. 핵폭탄 제조 능력은 소형화·경량화 목표가 거의 달성됐다고 판단된다. 장거리로켓 등 핵 투발 수단의 고도화는 한창 진행 중이며 1~2년 내에 ICBM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핵 능력의 고도화를 상당 부분 이룬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당장 북핵 비핵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의 핵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유엔과 개별 국가의 제재가 이뤄지고 있지만 완벽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한·미·중의 완벽하면서도 강력한 제재 공조가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당장 막기 어렵다. 그래서 당장은 북핵의 고도화를 정지시키고, 핵 능력이 외부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는 조치가 중요하다.


우선 한·미·중이 북한의 핵 고도화를 정지시키기 위한 최소공배수를 찾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한·미·중 3국이 끈기 있게 최소공배수를 찾고 공동의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비확산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차기 정부는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국제화를 전제로 재가동돼야 할 것이다. 다시는 개성공단이 폐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화는 필수적이라는 점을 북한 당국에 주지시켜야 한다. 국내 보수여론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국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금강산관광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북한 당국의 선행 조치를 전제로 재개돼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문제를 북핵 문제와 완전히 분리시켜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의 남북 경협 유지라는 차원에서 재개할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 문제 더 많은 협의 후 정리해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는 배치의 유효화를 열어 둔 한·미 당국 간 협의와 국민 소통을 통한 동의 속에 차기 정부에서 정리돼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 한·미 정부 간 결정을 무시할 수 없으며 중국의 반한감정 확대와 중장기적인 협력적 한·중 관계 발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사드 문제의 한 축이 국민 소통의 문제였기에 이에 대한 충분한 국민과의 대화와 동의가 요구된다. 국방부의 발표대로 사드 배치가 올 상반기 또는 올해 안에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당국 간 더 많은 협의와 충분한 국민 소통이 이뤄진 후 배치 문제가 정리돼야 할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국민과의 충분한 소통이 이뤄진 후 판단돼야 할 것이다.


동북아 안보 정세가 트럼프 미국 새 행정부와 시진핑 중국 지도부 간 전방위적 갈등으로 불안정해질 것 같다. 무역·군사·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미·중 관계는 파고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시진핑 국가주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개성 강하고 힘센 지도자들이 한반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거기에 트럼프까지 등장시키면, 각국 지도자들의 성향만으로도 동북아는 크게 출렁거릴 것이다.


미·중·일·러 간 관계가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한반도 정세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순실 사태로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정치권이 총력을 모아 초당적 대처를 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게 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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