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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얼어붙은 마을에서 아지트로 피신한 모리와 세 엄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빅뱅이 시작되고 30만 년쯤 흘렀을 무렵, 수많은 소행성이 서로 충돌하고 부서지기를 반복했고, 하나가 되었다 여러 개로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소행성 스스로 품고 있던 여러 광석과 보석들은 하나로 뭉쳐지는 소행성으로 마구 튕겨졌다. 그리고 이런 광석과 보석들 즉 메테리얼들이 유난히 많이 쌓인 특별한 행성이 생겨났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69>오메가 마을

그 행성에서는 화산 활동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뜨거운 온도의 용암이 분출하는 낮에는 메테리얼들이 녹았다가 용암 분출이 멈칫하는 밤에는 기온이 급락해서 다시 굳어졌다. 이 과정은 수천만, 수억 년간 반복됐고, 결국 일정한 패턴이 생겼다.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패턴화된 메테리얼들은 아주 단순한 기계가 되었다.

이 놀라운 창조는 그 후 수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도화되고, 디테일하게 변했다. 결국 메테리얼은 움직이는 기계로 성장했고 그 수가 점점 많아졌다. 그 무렵 행성의 화산 활동이 갑자기 멈췄다. 기계들은 화산으로 가보았다. 그곳엔 어마어마한 크기의 크레이터(분화구)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 중앙에 스피럴(소용돌이)이 공중에 떠있었다. 이 스피럴은 우주 최초의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하지만 스피럴은 독자적으로 생명을 유지시킬 순 없었다. 숙주가 필요했다. 기계들은 스피럴이 떠 있는 바로 그곳을 성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계들의 대장이 나타났다. 그들은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도시와 우주선을 만들었다. 스피럴이 위험했다. 스피럴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행성에는 하루 종일 어둠만이 계속되었다. 행성은 점점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대장은 우주로 에너지를 찾으러 떠났다. 그리고 지구라는 조용한 행성에서 그 에너지를 발견했다. 바로 덴데라 배터리였다. 배터리는 황금으로 에너지를 만들었다. 메테리얼들은 지구로 일기계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바로 황금을 캐기 위해서였다. 일기계들은 자신들을 지구로 보낸 자들을 ‘네피림’이라고 불렀다. ‘하늘에서 떨어진 자’라는 뜻이었다.

유령 마을이 되어버린 오메가 마을

그웨고난 뱀 안개의 공격으로 황폐해진 오메가 마을에선 회의가 열리고
수리·마루·사비를 징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 모리가 나서서 형과 누나들을 변호하는데

오메가 고고학교가 그웨고난 뱀 안개에게 먹히고 얼음으로 얼어버린 이후,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오메가 마을은 황폐해져 갔다. 그러나 아직 떠나지 않은 가족이 있었다. 바로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였다. 남편과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엄마들은 지긋지긋한 말썽쟁이들이 사라졌다고 셋이 모여 파티까지 열었다. 그런데 오메가 고고학교가 얼어버리자 마을은 점차 유령 마을이 되었고, 인적 없는 흉물스러운 마을이 됐다. 수리 엄마와 사비 엄마, 마루 엄마도 처음엔 마을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오메가 마을 합동대책위원회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 그들은 생각을 바꾸었다.

“이 모든 게 당신 아들 수리 책임이잖아요? 이 참사를 어떻게 책임지실 거죠?”

역시 유키 엄마였다. 수리 엄마는 발끈했다.

“수리가 오메가 고고학교를 얼음으로 만들었나요? 수리 책임이라뇨?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그러자 다른 엄마들이 들끓었다.

“저희도 듣는 얘기가 있어요. 댁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한 엄마가 이렇게 얘기했다.

“뭐요? 화목하지 못해요? 이것 보세요. 어머님!”

수리 엄마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키 엄마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당신 어머님 아니고요. 수리가 떠나기 전부터 당신이 남편과 매일 싸우다 내쫓았고, 사비 아빠, 마루 아빠와 함께 연구실에 숨어있다가 뭔 문명인지 찾으러 떠났다는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가 돌았다고요.”

“쯧쯧, 얼마나 괴롭혔으면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났을까?”

다른 엄마들은 혀를 끌끌 찼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얼굴이 빨개진 채 화를 삭이고 있었다. 사비 엄마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오메가 고고학교는 고고학자들을 키워내는 곳이에요. 그런데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 떠난 게 어떻게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인 거죠? 댁의 아드님, 따님도 모두 고고학자가 되려고 오메가 고고학교에 온 거 아니었어요?”

수리 엄마는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려 애썼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남편이랑 애들을 못 잡아먹어서 닦달하고 그러셨어?”

유키 엄마는 눈을 부릅떴다.

“제가 언제요?”

수리 엄마도 눈을 부릅떴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까지 납치해 갔다면서요?”

엄마들이 단체로 아우성이었다. 쑥대밭이었다.

“납치라뇨? 골리 선생님 덩치를 보세요. 애들이 어떻게 그 덩치를 납치해요?”

마루 엄마가 나섰다. 마루 엄마도 한 덩치했다.

그러자 이번엔 교장선생님이 나섰다.

“지금 거론하신 아이들, 수리·마루·사비는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서 품행이 좋지 않았습니다. 학업도 모른 체했고, 수업시간은 잠으로 때우고, 과목 선생님에게 함부로 말하는 등 심히 통제가 어려웠죠. 그래서 탑에 가두거나 강제 전학을 시키려고 했었는데, 그만 이런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세 아이들에게 징계를 주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 할 듯싶습니다.”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학교가 얼음 상태에서 풀려난다 해도 우리는 더 이상 이 아이들을 받아주면 안 됩니다.”

“옳소, 옳소!”

엄마들의 음성은 우렁찼다.

그때였다. 수리의 동생 모리가 갑자기 앞으로 걸어가더니 교장선생님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교장선생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모리를 쳐다봤다. 엄마들은 또 수군거렸다.

“오메가 고고학교는 고고학자를 키워내는 학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학생들을 학교에만 가두고 있었어요? 학교가 도서관인가요? 주입식으로 듣고 외운다고 고고학자가 되는 거예요?”

모리의 어린 음성은 또렷했다. 일순간 엄마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오메가 고고학교는 여러 대학들에 있는 흔한 고고학과가 아니잖아요? 진짜 판타지 소설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잃어버린 문명, 사라진 문명을 찾을 수 있는 고고학자를 양성하는 곳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학교 수업시간에 잡아두는 거예요? 학교에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라도 있나요?”

교장선생님은 헛기침만 했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으쓱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정의 평화가 뭐죠? 제시간에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 가고, 집에 들어오고… 뭐 그러면 평화로운 건가요? 그건 지루한 거 아닌가요?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고고학자처럼 창의적인 사람을 만들고 싶은 건지, 통제하기 쉬운 바보 같은 모범생을 만들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요.”

엄마들이 작은 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난 수리 형, 사비 누나, 마루 형이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우리 아빠는 더더욱 자랑스럽고요. 그리고 엄마 사랑해요.”

엄마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

“그웨고난 뱀 안개를 수리 형이 데려온 게 아니잖아요? 이 모든 게 그웨고난 뱀 안개의 계획이거나 무서운 운명의 계획인 줄 어떻게 알아요?”

엄마들의 훌쩍거림이 멈추더니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리 형이 그웨고난 뱀 안개를 처치하러 갔잖아요? 전 아빠들이 그웨고난 뱀 안개의 계략을 미리 알고 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돌아오지 못한 거에요. 그리고 형과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거죠. 형과 누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간 거고요. 이 학교를 구하기 위해서 갔다고요.”

엄마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점점 길어지자 교장선생님도 하는 수 없이 박수를 쳤다. 수리 엄마가 모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자 엄마들이 더 크게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들은 당분간이라도 마을을 떠나야 했다. 너무 추워서 살 수가 없었다.

수리가 남기고 간 구조 메시지

수리 엄마와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모리와 함께 아지트 ‘오리온’으로 갔다. 이 공간이 익숙한 모리는 수리가 남기고 간 많은 출력 용지를 살펴보았다. 구조 메시지가 있었다. 분명했다. 모리는 햄라디오를 조작했다. 헌터(무선통신 동호인들로 불가사의한 현상을 잡는 사냥꾼)의 대장 미르가 모리의 메시지를 받아주었다.

“형이 받은 구조 메시지는 다른 헌터들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다고 해.”

모리가 말하자 금세 엄마들의 표정이 굳었다. 모리는 곰곰이 생각했다. 순간 모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맞아. 할 수 있어.”

“무슨 얘기야? 모리.”

수리 엄마가 물었다.

“형한테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그게 가능해?”

사비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어? 시간대가 안 맞을 수도 있잖아?”

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하지만 형이 그랬어요. 지구에서만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지구를 벗어나면 시간은 앞으로도 흐르고 뒤로도 흐른다.”

엄마들은 모리의 얘기가 알쏭달쏭했다.

“제가 연락하면 시간을 돌고 돌아 수리 형에게 연락이 갈 거예요.”

“수리한테 디바이스가 있기는 한 거야?”

마루 엄마가 물었다.

“그건 모르죠. 형이 어떤 디바이스를 가져갔는지. 하지만 형이 누구예요? 고고학자예요. 맨손으로 가진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형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어요.”

“뭐? 가까운 곳?”

사비 엄마는 깜짝 놀랐다.

“공간적으로 가깝지만 시간대가 전혀 달라서 만나기 어려운 거죠.”

다음 호에 계속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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