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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국민연금, 투자기업에 제 목소리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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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투자기관들은 1~2% 부자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본시장의 본령입니다.” 지난해 9월 책임투자원칙 포럼에서 골드만삭스 전 CEO 데이비드 브러드가 했던 말이다. 그는 미국의 전 부통령인 앨 고어와 함께 런던에서 제너레이션 자산운용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은 다음 ‘세대’를 고려한다는 투자철학을 갖고 있다. 국내 투자기관들에게 ‘다음 세대와 모든 사람을 위한 투자’를 말하면 생뚱맞다고 할 것이다. 사행심과 한탕주의가 만연한 한국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다음 세대와 여러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해야하는 기금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이 기금 540조원은 국민의 노후자금이며, 2060년까지 존속되기에 장기투자기금이고 상장기업 대부분의 주주이기에 보편적 소유주이다. 따라서 이 기금 운용은 일반펀드와는 달라야 한다. 일반펀드가 단기매매 위주로 투자를 한다면 이들은 주주권 행사를 통해 투자한 기업의 성과를 점검해야 한다. 일반펀드가 개별종목의 관점이라면 이들은 산업의 장기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 발전의 관점에서 운용해야 한다.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푸는 방향으로 투자해야 한다. 국내 주식에 투자된 100조원의 수익률은 특정 종목들이 아니라 한국경제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때 극대화된다.

만일 국민연금 기금이 단기 수익률에만 집착하면 이렇게 투자할 수 있다. 소수주주들을 희생하고 대주주 이익 위주로 경영하는 회사, 생산과정에서 미세먼지를 대량 배출하는 회사, 유해물질 발생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협력사에 불공정한 거래를 일삼는 회사, 로비로 사업권을 따내려는 기업,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하는 회사, 산재사고 다발기업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사회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부정적 외부화’를 일으킨다. 이들의 수익은 개별로는 플러스이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섬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반펀드라면 모를까 국민경제와 공동운명체인 국민연금이 이런 기업들에 투자한다면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서는 중대한 위험요소인 때문이다.

최근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국민연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향후 사법적 판단 결과를 지켜보겠다. 다만 이번 사건을 통해 다음의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청지기(스튜어드 십)처럼 투자했는가. 정치권과 관련 부처들은 국민의 돈 540조원을 둘러싼 이권다툼을 끝내려는가. 보편적 소유주로서 투자를 통해 시장실패, 대리인 문제 등을 개선하려는 철학이 있는가. 정부와 국회는 연금운용의 실질적 독립을 보장해줬는가. 선진 투자기법인 책임투자 원칙에 충실했는가. 다음 세대와 모든 이들을 위한 투자원칙에도 관심을 갖는가. 이제 이 질문들에 답하며 해법을 찾아야 국민연금은 바로 선다. 그렇지 않으면 기금운용자들도, 국민도 반복되는 스캔들로 계속 불행할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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