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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피아니스트의 최정점, 조성진 독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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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문화재단]

조성진(23·사진)이 왜 좋은 피아니스트인가.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는 이 질문에 대한 답과 같았다.
조성진은 노래를 잘했다. 20세기의 복잡한 리듬과 화음에서도, 독일권 작곡가가 만든 구조적인 음악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건 건반을 통해 나온 조성진의 유려한 노래였다. 결국 멜로디였다. 20세기 대표 작곡가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조차 조성진의 손끝을 통해서는 선율적인 음악이 됐다. 다른 무엇보다 조성진이 피아노로 노래를 만들어내는 데에서만큼은 확실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은 마치 러시아 음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휘몰아치는 노래로 장식됐다. 롯데콘서트홀의 울림이 유난히 강한 탓도 있었지만, 조성진의 슈베르트는 세고 무거웠다. 강한 부분은 강하게, 여린 부분은 더 여리게 강조되면서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독일권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젊은 연주자의 실험이었다. 1악장에선 왼손의 균형이 조금 흔들렸지만 조성진은 잘못된 음이나 흔들리는 리듬 같은 것은 크게 개의치 않은 채 강한 음악을 줄기차게 그려나갔다.

[사진 롯데문화재단]

조성진의 노래 실력이 어떻게 좋았는지를 설명할 차례다. 쉽게 말하면 그는 영리하게 노래하는 피아니스트다. 무엇보다 의외성이 있다.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때 중요한 음이 나오는 타이밍을 반박자 정도, 때로는 그보다 조금 더 미세하게 늦게 터뜨린다. 숨죽이고 듣고 있던 청중의 긴장감을 높인 후에 기가막힌 해방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많은 피아니스트가 낭만시대 음악을 연주할 때 쓰는 기법이다. 하지만 조성진만큼 의외성을 간직하면서도 촌스럽지 않게 구현하기는 어렵다.

쇼팽 발라드에서도 그랬다. 발라드 2번에서는 폭발해야만 할 것 같은 부분에서 오히려 건반을 다스리며 고분고분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발라드 3번 중 두터운 화음을 연달아 쳐야 해서 어려운 부분에서는 갑자기 속도를 확 올려서 휘몰아 쳐버렸다. 발라드 4번에서도 무심한 듯 템포를 당겼다 놓기를 반복했다. 느린 부분에서는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고 속도를 잡아당긴 부분에서는 청중을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채근했다. 이 모든 바탕에는 어린 시절부터 셀 수 없이 연습하고 연구하고 또 연주했을 쇼팽 발라드에 대한 완벽한 테크닉이 있었다.

[사진 롯데문화재단]

종합하면, 그는 피아노로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좋은 예를 구현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식상한 표현은 스마트하게 비켜갔고, 작은 실수는 대범하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간혹 정확하지 않았던 리듬, 가끔씩 들렸던 잘못된 음조차 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일부로 보일 정도였다. 조성진이 이런 그림을 의도한 것이라면 굉장히 머리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는 타고난 그리고 축복받은 예술가다.

이 모든 추측과 결론을 뒤로 한 채 그는 프랑스식 앙코르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드뷔시의 ‘달빛’이었다. 음악가들이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 짜는 모든 계획은 무색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했다. 건축물과 같이 짜여진 음악의 구조, 변증법적으로 거듭되는 멜로디의 발전 같은 것들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의 발 아래에 있을 뿐이다. 노래할 줄 알고 좋은 소리를 만들 줄 아는 조성진은 그 특성만으로도 음악에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조성진의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 후 첫 한국 독주회였다. 9분만에 끝나버렸던 ‘예매 전쟁’에서 티켓을 구하지 못했던 이들에겐 미안하다. 당신은 지금 한창 때의 전성기 피아니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최정점의 예술을 놓쳤다. 조성진의 독주회는 4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한번 더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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