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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시사 TONG역기] 조류인플루엔자, 공장식 밀집사육의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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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초비상이 걸린 충북 음성의 오리농장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방역당국이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11월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초비상이 걸린 충북 음성의 오리농장에서 방역당국이 출입을 통제하고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애니메이션 ‘치킨런’에서 영국 농장의 닭들이 자유를 찾아 대탈주를 감행한다. 닭의 해, 정유년이 밝았지만 대한민국의 닭과 오리들은 대학살극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적으로 돌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AI)는 지금까지 2800만 마리가 넘는 살처분이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에 유행한 바이러스가 H5N6, H5N8로 워낙 고병원성인 데다 어수선한 정국으로 방역 대책이 허술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난 2003년 국내 상륙한 AI가 연례행사처럼 발생해 왔다는 점에서 뭔가 근본적인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마다 대륙을 넘나들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철새만 탓할 게 아니라 가축의 질병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밀집사육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철새 탓인가, 밀집사육 때문인가

충남의 한 오리농장에서 주인이 AI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농장을 소독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충남의 한 오리농장에서 주인이 AI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농장을 소독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농림축산식품부는 늘 AI가 발생하는 원인이 겨울철 한반도를 찾는 철새라고 한다. 특히 이번에 확산 속도가 빨랐던 이유는 감염된 철새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날씨가 추워지면 바이러스 생존 기간이 길고 소독약이 얼어붙는 경우도 많아 방역이 힘들다고도 토로했다. 하지만 철새가 감염 경로라 하더라도 어차피 철새의 주기적 이동은 막을 수 없는 만큼 원인으로 지목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극도로 조밀한 환경에서 키우는 방식을 개선해 가축의 면역력을 높일 것을 주문한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AI 원인을 ‘공장식 밀집사육(factory farming)’이라고 했다. 밀집사육을 하면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퍼지는 효과뿐만 아니라 동물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뒤덮은 흑사병의 배경도 갑자기 늘어난 인구와 밀집 거주라는 가설이 있다”고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웹진에 소개했다.

포항의 한 양계농장에 닭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형태의 공장식 사육을 두고 유전적 다양성 파괴, 위생문제 등의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포항의 한 양계농장에 닭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형태의 공장식 사육이 닭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AI 등 질병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중앙포토]

현재 국내 가축의 사육 환경은 어떤가. 근래 들어 가격이 좀 비싼 유기농 달걀들이 ‘방사형(free range·다소 넓은 축사에서 자유롭게 키움)’이란 마크를 달고 시판되지만 아직은 빽빽한 공장식 양계장이 훨씬 더 많다. 이런 양계장들은 공기 순환이 나쁜 밀폐된 공간에다 햇빛마저 차단돼 산란 닭의 면역력이 크게 위협받는다.

‘개체거리(individual distance)’는 비단 사람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은 ‘특별한 관계가 없는’ 타인과 1m쯤 떨어져 있어야 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1㎡에 닭은 9마리, 오리는 2~3마리를 넘지 않아야 고유습성을 지킬 수 있다. 국내에서 개체거리를 지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110개 농장에서는 AI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머니투데이 12월 29일 기사 참조) 질병에 강한 야생 철새들이 가끔 AI 떼죽음을 당하는 것도 서식지 파괴로 인해 한 지역으로 몰렸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좁다 보니 분변과 악취 등 비위생적 환경도 문제가 되는데 한편으로는 소독된 인공부화기, 무균 상태의 배합사료 등 면역력을 키울 기회가 없다는 점이 공장사육의 더 큰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이다. 그래함 루크 런던대 임상미생물센터 교수는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면역력이 약해 알레르기성 질환에 취약하다”고 주장한다.(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참조) 사실 공장식 농장에서는 AI가 아니더라도 여러 질환에 의한 집단 폐사가 심심찮게 일어나며 항생제 오남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공장식 사육은 유전적 다양성도 해친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닭이 집단 질병에 취약하다”고 EBS 특강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 등에서 줄곧 강조해 왔다.

백신이냐 살처분이냐

살처분을 위해 동원된 인력들이 오리를 살처분하기 위해 자루에 담아 옮기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살처분을 위해 동원된 인력들이 오리를 살처분하기 위해 자루에 담아 옮기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그렇다면 사람에게 해마다 ‘독감 주사’를 접종하듯이 왜 AI 백신을 쓰지 않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백신을 쓰면 ‘AI 청정국’ 지위를 잃게 돼 가금류 수출 길이 막힌다고 한다. 또 백신을 잘못 쓰면 인체 감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이준원 차관은 지난달 19일 “백신을 사용하는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인데 모두 인체 감염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백신을 통해 인체 감염 우려가 있는 위험한 방향으로 바이러스 변이가 나타날 수 있고 이 때문에 백신의 효과도 100% 장담할 수 없다.
[관계 기사] 중앙일보 12월 21일자 AI 악순환 빠진 한국, 백신이냐 친환경사육이냐 갈림길(http:www.joongang.co.kr/article/21025534)

따라서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축산선진국과 같이 AI가 발생하면 ‘예방적 살처분’을 통해 확산을 차단한다. 감염되지 않았더라도 반경 3km 내 조류를 모조리 매장한다. 일본에서도 중국에서 건너온 철새로 AI가 자주 발생하지만 살처분을 통해 조기 차단한다. 다만 우리보다 살처분 규모(최근 57만여 마리)가 훨씬 작다. 대대적인 친환경 사육 구조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대신 맘껏 구르는 환경을 조성한 핀란드는 AI와 돼지콜레라 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여행 잡지 쿠켄 2016년 12월호 참조)

물론 이들 나라의 닭고기 등 가격은 비싼 편이다. 우리는 영세 사육장 개선에 거금을 투입할 수 없고 국민들 살림살이 형편을 생각해 해마다 대량 살처분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AI를 보면 꼭 동물복지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 측면에서도 의문이 든다. 치솟는 달걀값, 천문학적 농가 보상금 등을 고려하면 말이다. 살처분 담당자의 정신적 트라우마도 치유 대상이다. 어린이들은 가창오리 군무를 볼 수 없고 천연기념물 원앙을 보러 동물원에 갈 수 없다.

대량 살처분의 비윤리성과 침출수 유출 문제 등은 매립 방식을 놓고도 불거졌다. 원래 닭과 오리 등은 이산화탄소나 질소 가소 등으로 안락사한 뒤 묻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산 채로 묻고 있다는 동물보호단체 등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케어(CARE·Coexistence of Animal Rights on Earth), 동물보호연대, 노동당, 녹색당 등 30개 동물·환경·종교·정치 단체는 지난달 21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지자체 등이 현행 동물보호법, AI 방역지침 등을 어기고 있다”면서 “타액, 혈액, 깃털 등이 바이러스를 더 확신시킨다”고 항의했다.

인체 감염 가능성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I의 피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전국이 초비상에 걸렸다. 집중 방역을 실시하는 거점소독소인 충북 오송읍사무소에서 사료차를 방역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I의 피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전국이 초비상에 걸렸다. 집중 방역을 실시하는 거점소독소인 충북 오송읍사무소에서 사료차를 방역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흔히 인플루엔자를 ‘독감’이라 부르면서 마치 감기인데 독한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고열과 호흡기 질환 등 증상이 비슷해서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감기를 일으키는 여러 바이러스 원인균과는 다르다. 서울대병원 자료에 따르면 인플루엔자는 종별 특이성이 있어 조류와 인간이 함께 걸리지 않지만 간혹 유전적 변이가 생기면 이종(異種)간 감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포천에서 고양이 2마리가 AI에 감염되기도 했다.


중국·베트남·라오스에서도 발생한 H5N6(H와 N은 단백질 종류, 숫자는 단백질 형태)형은 지난 3년간 17명에게 감염돼 10명이 숨졌다. 앞서 2013년 H7N9형은 중국에서 400명 이상이 감염됐다. 2003년부터 중국과 동남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AI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50명이 넘는다.(천명선 『미생물과 감염병 이야기』 참조) 아직 국내에선 인체 감염 사례가 없다. 조류를 많이 만지는 농업인 및 방역 종사자는 철저히 대비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유통 및 조리 환경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히 AI는 아직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됐다는 보고는 없다. 그러나 1918~19년 수천만 명 몰살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스페인 독감’이 사람 간 전염을 일으킨 조류인플루엔자의 변종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과학잡지 ‘네이처’ 등에 발표된 적이 있어 보건당국이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다.
[관계 기사] 중앙일보 1월 2일자 AI 발생 지역에선 반려동물 데리고 외출 말아야(http:www.joongang.co.kr/article/21068209)

#AI에 관한 상식 및 생활 예방책

철새 도래지, 가금류 농장 방문을 자제한다.
AI에 걸린 닭은 3일 이내에 죽는다. 죽은 닭, 오리는 눈으로 봐도 상품성이 크게 떨어져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AI에 걸린 닭은 알을 낳지 못한다. 껍질에 묻더라도 판매 전 세척 및 소독을 한다. 그래도 달걀을 만지고 손을 씻는 게 좋다.
AI 바이러스는 고기 자체에는 없으며 배설물 등에 존재한다. 생식은 피하며 조리 중 식기류 오염을 막는 게 좋다. AI 바이러스는 75℃도로 5분간 가열하면 사멸한다.
감염됐을 때는 신종플루와 같이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로 치료한다.
겨울철 (사람에) 유행하는 계절인플루엔자 예방접종으로는 AI 인체 감염을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 AI 인체 예방백신은 개발돼 있지만 아직 사용 단계가 아니다.

*서울대 의학정보, 삼성서울병원 블로그 등 참조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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