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정치적 중립

중앙일보

입력 1987.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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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군의 명칭을 특히 「국군」으로 한데는 훌륭한 명분과 복합적 의미가 있다. 그것은 국방」을 고유 임무로 하는 집단일 뿐 아니라 계급을 초월한「국민의 군대요,「국가」의 군대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계급을 내건「인민군」,정치와 혁명을 내건 「해방군」, 이념을 내건 「적군」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우리 국군은 정치상황에서 초연하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그 본래의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5·16 쿠데타 이후 군의 일부 장교가 정치에 깊이 개입하고 주도해 왔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같은 정치개입의 당위성이나 불가피성 여부는 역사의 판단을 기다러야 할 문제이나 그것 자체가 불행하고 원래의 군의 위상에서 벗어난 일임에는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체의 변동이나 왕조의 변화기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군의 개입이 있었다. 그것은 힘의 조직이라는 군의 성격상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래로 우리나라는 왕후와 문신중심의 문민정치가 지배해온 정치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한때 무인이 권력을 행사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같은 문민정치의 전통은 조선조이래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다. 문관이 각 지역의 행정직을 맡아 병마권을 행사했다. 관채사가 병마절도사를 경직한 것이 그 예다.
가까이는 4·19당시 계엄 출동군이 엄정 중립을 지켜 발포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그때문에 군은 경찰의 발포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구조하면서도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번 6월의 시계사태를 전후해서도 우리 국군은 엄정 중립을 고수했다. 「준내란」상태로 간주되던 그 무렵 군의 움직임은 사태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내외의 관심을 모았었다. 그러나 끝내 군은 개입하거나 동원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국군이 그만큼 성숙하고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새로이 입증한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노태우민정당대표의 외지회견으로 더욱 명백해졌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누가 대통령이 될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다. 한국 군부는 국민의 군대이며 한국민이 어떤 결정을 하든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것은 군장성 츨신이며 여권의 책임있는 정치지도자의 확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있는 말이다.
갈수록 다원화, 전문화 돼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군의 정치개입이 하나같이 실패로 끝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중남미의 경우 정치군인들이 정권을 잡은 뒤 민주주의의 말살, 경제파탄, 국내 분열, 외세개입을 불러 들여 결국 「혼란의 악순환」 끝에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왔다.
다원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군은 많은 사회분야 가운데 국방을 맡은 한 요소다. 따라서 군도 직업화, 전문화되면서 다른 분야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돼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전문화된 직업 정치인이 중심이 되어 다른 분야의 개입을 불러들이지 않도록 잘해 나가야 한다.
노태우대표의 말대로 군이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는 한 우리의 정치발전은 더욱 촉진되고 사회는 한층 밝아질 것이다.
다원적이며 개방된 우리 사회도 이제는 각 직능분야가 다른 분야의 간섭없이 서로 경쟁하며 균형있는 발전을 지향해야 할 때다.
정치는 정치인에, 경제는 기업인에 맡기고 학생은 학교에서, 근로자는 직장에서, 군인은 병영에서, 그리고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각각 국가가 부여한 사명과 임무에 충실할때 우리 국가공동체는 더욱 탄탄하게 발전돼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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