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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초등생들이 있기에 2017년 대한민국엔 희망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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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1일 오후 3시쯤 울산시 울주군 온산파출소. 김행환 경장이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초등학생 두 명을 폐쇄회로(CC)TV로 발견해 파출소로 데리고 들어갔다. 김 경장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이들은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아이들은 “경찰 아저씨들 고생하셔서…”라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봉지에는 따뜻한 캔커피 5개가 들어있었다. 도유빈(온산초4)군과 김지혁(온산초2)군은 “아침 등굣길마다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어 용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파출소에 있던 경찰들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경찰들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마음에 걸렸지만 ‘동심파괴범’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온기가 남아있는 캔커피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마셨다. 함께 있던 김지훈 경사는 “아름다운 마음에 대한 상”이라며 아이들 손에 용돈을 쥐여줬다.

앞서 12월 6일 전남 해남경찰서 읍내지구대에 한 초등학생이 찾아왔다. 이 초등생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이 학생은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는 길인데 세무서 앞길에 떨어져 있는 돈을 주웠다"며 지구대에 신고하기 위해 20분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꼭 주인을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이 초등생을 보면서 경찰관들은 1000원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사진 경찰청 제공]

[사진 경찰청 제공]

비슷한 미담은 지난해 3월 울산 북구 양정파출소에서도 있었다. 당시 임재현(양정초3)군이 “길에서 주웠다”며 1000원을 파출소에 맡겼다. 당시 근무 중이던 최용근 경위는 “경찰 생활 20년간 1000원짜리를 주워 주인을 찾아달라는 학생을 처음 봤다”며 임군을 칭찬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정재훈(신용초6)군은 지난해 11월 30일 하굣길에 150만원이 든 지갑을 발견하고 112에 신고했다. 이 돈은 기초생활수급자 박삼규씨가 석 달 동안 모은 월급이었다. 돈을 전달받은 박씨는 “정군 같은 학생이 많으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12월 6일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강나연(제천시 청풍초2)양이 삐뚤빼뚤 직접 쓴 손 편지와 기부금 70만원을 전달했다. 강양은 전국과학전람회 수상금 40만원 등 경진대회에서 받은 장학금을 모아 기부금을 마련했다. 강양은 편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집에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며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외에도 충남 서산 차동초등생 7명이 2~3년 동안 25cm 이상 머리카락을 길러 지난해 사단법인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증했다. 어린 학생들의 선행이 훈훈한 감동을 줬다.

지난해 권력층의 비리와 거짓말 때문에 많은 국민이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어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하게 행동하고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어린이들이 더 많았다. 이들이 있어서 2017년 대한민국에 희망이 보인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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