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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재래닭 복원 노력해온 파주 농민 홍승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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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띠 해 ‘정유년(丁酉年)’을 맞아 자취를 감추다시피한 우리의 재래 닭 복원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현인농원’ 홍승갑(77) 대표의 다짐이다. 그는 양계를 생업으로 하면서 반 평생을 재래 닭 복원에 힘쓰고 있다. 홍 대표는 40대 초반이던 1982년부터 35년간 재래 닭의 색상을 복원하고 혈통을 보존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흑색·황색·황갈색·흑갈색·흰색·회색 등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2000여 마리의 재래닭을 기르고 있다. 그는 “82년 중부지방 ‘황계’의 맛과 약효가 탁월하다는 ‘본초강목’ 기록을 접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집에서 닭을 길러보면서 사라져가는 재래 닭에 대한 향수가 남달랐던 그였기에 본초강목이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고 했다. 이때부터 재래 닭 복원과 사육을 생업이자 인생 목표로 정했다. 홍 대표는 “전국의 재래 닭들을 수집한 뒤 교배·선발·도태 등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래 닭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지다시피한 만큼 문헌 등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색상을 기반으로 신체적 특징을 재현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깃털색이 다른 15종의 재래닭을 복원중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현인농원이 기른 흑색닭이 2012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현인흑계’라는 이름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초기에는 재래닭이 있다는 소문을 접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닭을 사들였다. 복원의 시작은 '모델' 선발이다. 이어 우수한 배우자를 정해 교배를 통해 확실한 색깔을 내는 것을 육종한다. 이어 지속적인 교배를 통해 같은 유전자가 이어지도록 하는 ‘고정화 작업’ 방식으로 복원을 해나가고 있다. 4㎡의 계사에 10여 마리씩 넣어 활동 공간을 충분히 제공한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기르는 재래닭은 조류 인플루엔자(AI)에도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농장엔 아직까지 AI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재래닭 연구에 몰두하느라 변변한 돈 벌이를 하지 못했다. 재래닭이 낳은 친환경 유정란과 병아리를 팔아 힘겹게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아내(71)가 가장 노릇을 떠맡아 준 덕분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 2013년부터 정부로부터 유전자원 관리비 명목으로 사료비·인건비 등을 지원받으면서 숨통이 조금 트였다. 이 농장은 2012년 국립축산과학원의 ‘가축유전자원 관리농장’으로 지정됐다. 연성흠 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장은 “현인농원이 육종한 재래닭 15종 가운데 현인흑계·현인황갈계 등 2종은 복원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전국 재래닭 혈통을 제대로 복원해 종자를 후대에 물려줄 것"이라며 “재래닭은 상업성은 부족하지만 화려한 색상과 아름다운 자태가 특징인 만큼 '관상용'으로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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