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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골짜기마다 술 익는 마을 만드는 게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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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호 8 면


“천하명주 나서는 문, 애호가들 들어오는 문 문경새재 고개 앞에 우뚝 섰도다! 천년 우리 조상님들 편히 쉬게 했던 이 주막 터 다가올 천년엔 세계인들 찾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길”


술 익히는 일에 37년을 바친 한국 양조의 대가 이종기(62) 오미나라 대표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경북 문경시 진안리 문경새재 입구 자신의 양조장에 거대한 ‘증류기 게이트(門)’를 세우고선 감회에 젖었던 모양이다. 시조협회 문예지 신인상을 받은 작가답게 그는 자신의 삶터이자 놀이터라는 양조장과 인터넷 공간 곳곳에 양조의 열정과 술 만드는 흥을 글로 적어 두었다. 그의 일터가 단순 술 공장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패스포트, 썸씽스페셜, 윈저12, 윈저17, 골든 블루…. 술잔깨나 꺾으며 살았다는 ‘아재’들에게 친숙한 국산 위스키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2011년엔 유기농 오미자를 재료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750㎖ 9만9000원)’를 5년 개발 끝에 만들었다. 이듬해 열린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때 건배주로 채택되면서 업계를 넘어 세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여름엔 오미자를 증류한 브랜디 ‘고운달’(52도, 500㎖ 36만원)과 사과를 증류한 ‘문경바람’(40, 25도)을 내놔 호평을 받았다.


지난주 주흘산 문경새재 입구 오미나라를 찾았다.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1821~1861) 신부가 선종한 주막이 있던 자리다. 술병이 빼곡한 숙성고와 증류기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술 향, 온기가 기분 좋게 젖어드는 공간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10시간째 증류기 주변을 오가고 있다는 이 대표를 만났다.


-증류기 게이트가 이국적이다.


“실제 스코틀랜드에서 들여온 구리로 만든 증류기입니다. 1981년 국내 술 회사에서 10년간 사용한 걸 제가 사뒀어요. 창고에서 나오는 우리 술이 이 문을 통해 세계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어요.”


2005년 충주시에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부인 김종애씨가 운영)을 설립한 이 대표는 술에 관한 한 무엇이든 모아둔다고 했다. 4년 전 스위스의 한 셰프로부터 추천을 받고 오미로제와 이종기 대표를 알게 됐다는 와인평론가 김혁씨는 이 대표를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열정과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대 농화학과 75학번인 이 대표는 졸업과 함께 다급히 직장을 찾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였다. 그때 들어간 회사가 오비맥주다. 다국적 주류회사 씨그램, 디지아노코리아 부사장까지 지내며 이 대표는 양조 및 증류의 1인자로 우뚝 섰다. 회사 문을 나선 건 2006년이다. “한국 술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작정한 지 15년 만의 결단”이었다고 한다.


“1990년 회사에서 스코틀랜드로 2년간 유학을 보내줬어요. 양조학 석사과정이었는데 파티 때 지도교수가 자기 나라의 술을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인삼주를 갖고 갔죠. 그 양반이 ‘한국 사람들은 술과 약을 구분하고선 마시나’고 농담을 던졌는데, 학생들이 배를 잡고 웃더라고요. 유학생 중엔 일본 아사히·산토리 소속 친구들도 있었는데 일본 사케와 위스키는 훌륭하다고들 했죠. 자존심이 정말 상했습니다. 그때 독하게 마음먹었습니다. 세계에 내놓을 우리 술을 꼭 만들겠다고요.”


-오미자를 선택한 이유는.


“쌀·보리·수수·감자·각종 과일 등 양조에 쓰이는 수십 가지 원료로 술을 만들어 봤어요. 그 가운데 오미자가 탁월했어요. 색깔·향·맛. 술은 자고로 관능미가 있어야 하는데 오미자가 최상이었어요. 몸에 좋은 성분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죠.”


이 대표는 오미자 주산지인 문경에 터를 잡았다. 350년 전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샴페인을 만든 동 페리뇽 신부를 스승 삼아 오미자를 연구했다. 천연 방부제 성분으로 발효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연구를 거듭해 오미자 발효에 맞는 효모를 찾아내고 특허까지 냈다. 이 대표의 술들은 해외 명주 수준으로 우리 음식에 더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름지기재단 산하 전통 식문화 연구소 ‘온지음’과 ‘품 서울’ ‘콩두’ 등 프리미엄 레스토랑의 다이닝 메뉴로 올라가 있다. “연 매출 10억원이 안 됩니다. 전문 마케팅을 할 형편도 아직 안 되고요. 레스토랑에서 문의가 오면 제가 술을 들고 찾아갑니다.” 인터뷰 중에 미국으로 고운달과 오미로제를 보내달라는 카톡이 이 대표에게 날아왔다.


“스파클링 와인을 처음 만들고는 브랜드 디자인 전문가로 이름 높던 손혜원씨를 찾아갔죠. 지금은 국회의원이시죠. 그분이 시음해 보곤 지어준 이름이 오미로제입니다. 와인 한 잔도 잘 안 마시는데 어쩌다 반 병을 비워 버렸대요. 그러면서 무조건 ‘오 마이 로제’라 불러야 한다고 했어요. 그게 오미자의 오미(Omy), 옅은 붉은 빛을 띠는 와인을 뜻하는 로제(Rose)로 진화해 ‘OmyRose’ 디자인이 탄생한 겁니다.”


이 대표는 “버티고 노력하니 많은 이들이 도와줬다”고 말한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이 칠순 잔치 때 다른 고급 양주들과 시제품 고운달을 함께 내놓으셨는데 고운달만 동이 났답니다. 왜 정식 출시하지 않느냐고 해서 디자인이 엄두가 안 난다고 했더니 병 디자인을 해주셨어요. 6개월 작업 끝에 우리 달항아리 백자와 편병 디자인이 융합된 고운달이 지난여름 나왔습니다.”


-고운달 1병을 증류하는 데 오미자가 3~4㎏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제 인생 목표는요. 세계 최고의 명주 반열에 오를 한국 술을 만드는 것, 그 성공을 모델로 통일시대 백두대간을 따라 수만 개 브루어리(양조장)가 생기도록 기반을 닦아놓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농촌 특산주가 제대로 되면 농촌에서 나는 재료를 쓰니 소득은 올라가죠. 젊은이들은 당연히 우리 땅, 환경을 지킬 거고요.”


미국 캘리포니아의 홀대받던 나파 밸리가 와이너리로 성공하면서 관광객과 은퇴 부자들이 몰리는 땅이 된 게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농식품 6차 산업은 지역 특산주 활성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 서북쪽 팡산(房山)에서 열린 ‘아시아 와인&스피릿-실크로드’ 행사에 가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91년부터 프랑스의 포도 재배 전문가와 양조 기술자를 불러 와이너리로 가꿨는데,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생산한 포도주 품질이 세계적 수준이었습니다. 지난해 봄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등을 다녔는데 마을마다 매실을 따지 않아 다 버려져 있었어요.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중국은 준사막을 금덩어리로, 한국은 옥토를 황무지로 만드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한때 매실주가 유행했지 않았나.


“양조 기술이 부족하고 소주 값이 너무 싸니까 가격 경쟁에서 안 됩니다. 비전이 없으니 양조·증류를 배워 보려는 사람들도 없고요.”


이 대표는 2006년 비아지오코리아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생활을 접었다. 그해 대구 영남대 식품공학과에서 양조학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열심히 가르쳤다고 한다. 3년 뒤 그만뒀다. 강의도 폐지됐다. “가르쳐도 취직을 시킬 수가 없었어요. 제자 120명 가운데 주류 회사에 취직시켜 현재까지 다니는 건 두 명뿐이에요.” 소주·맥주 회사 10여 개가 소비의 90%를 점령하는, 주종에 감미료만 타 쉽게 만들 수 있는 소주 일색 시장에선 양조 전문가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모델이 돼서 양조산업을 이끌어보자 작정하고 시작한 게 오미자로 고급 술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달리 가양주(家釀酒)가 다양한 형태로 발달했어요. 일제가 강제 폐쇄하기 전까지 14만 개의 양조장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와이너리가 12만 개 정도니 대단했던 거죠. 일제가 전쟁 군수용으로 개발한 소주가, 막 걸러서 먹는 막걸리가 한국 전통주처럼 되면서 한국의 양조 문화도, 술 문화도 떨어진 겁니다. 정성과 품이 들어간 술은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입사 초반 주변에서 “왜 하필 술 회사에 다니냐. 한의사 가업이나 잇지”라고 해 한의대 진학을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정조가 전국에 강습령을 내렸다는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접했다. 고을 사람들의 술 마시는 예법을 다룬 책이다. “술은 사회 예절의 상징, 주도(酒道)는 선비 문화의 큰 축이었던 거죠. 회사가 다국적 기업이었는데 외국인 직원들의 프라이드는 상당하더라고요. 술 트랙에 제 인생을 올린 건 이 『향음주례』 덕분입니다. 하하.”


술은 뭘까. “사회의 공기, 물 같은 존재”라는 게 이 대표의 답이다. “1920~33년 금주령이 내려진 13년간 미국 사회는 폭력이 난무하는 등 혼돈 상태였잖아요. 좋은 술, 좋은 술 문화는 사회를 살찌게 만듭니다. 폭탄주 문화 같은 건 일제시대와 전후 곤궁기를 거치며 막술과 막 문화가 마치 우리 풍속인 양 변질돼서 자리 잡아 버린 탓이죠.”


-아직 적자라고 들었다.


“제 장점은 잘 버티는 겁니다. 연말 흑자 전환을 예상했는데 경기가 지난해 메르스 때보다 더 가라앉았네요. 관광객도 없고요. 여름에는 도수와 가격을 내린 오미로제와 문경바람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1~2년 내 안정적으로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배우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저의 실험이 진행형이고, 제가 실패하면 같이 망하니까 거절했어요. 내후년 정도 안정되면 우리 농촌을 살리려는 젊은 도전자들을 맞아서 가르치고 함께 갈 생각입니다. 술문화학교도 열고 싶고요. 저희 종조부께서 1907년 의병을 일으키시고 한·일 강제병합 때 옥사하셨는데, 저도 술에 관한 한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미주(美酒)를 빚어 세계적 명주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요.”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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