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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반기문 측 “연대할 경우 가장 파괴력 큰 건 김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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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승만과 아이젠하워, 그리고 김종인.’

측근들이 전하는 귀국 후 행보 구상
“인기는 높지만 국내 기반 약해
이승만·아이젠하워 모델 벤치마킹
당분간 특정 정당 손 잡지 않고
지지층 결집 때까지 독자 행보”

내년 1월 중순 귀국을 앞두고 있는 반기문(얼굴)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와 관련해 반 총장 측 인사들이 제시하고 있는 키워드들이다. 반 총장 측 관계자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 인지도가 높지만 국내 정치 기반은 전무했다는 점에서 반 총장은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미국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과 조건이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 총장도 이들처럼 귀국 후 곧바로 특정 정당과 손을 잡기보다 보수·중도층의 추대 분위기가 오를 때까지 독자 행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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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다. ‘아이크’라는 별칭으로 인기가 높았던 그는 정치와 거리를 뒀으나 자신을 대통령으로 원하는 여론이 달아오른 뒤에야 정계를 노크했다. 당시 ‘아이젠하워를 위한 시민 조직’이 전국적으로 결성돼 ‘나와라! 아이젠하워’ 운동까지 벌어졌다. 공화·민주당 모두에서 러브콜을 받던 그는 1952년 대선 예비선거 직전에야 공화당을 선택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귀국 후 정당을 만들거나 가입하지 않고 정당·사회단체의 연합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활동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한민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까지 포함해 사실상 모든 정파의 추대를 받았다.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1940년대 말의 한국 상황을 현실에 곧바로 대입하긴 어렵다.

또 아이젠하워의 경우 공화·민주 양당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았지만 반 총장은 ‘보수세력의 후보’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이젠하워 모델이 한국 정치에서 성공한 사례도 없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도 아이젠하워의 ‘시민 대통령’ 콘셉트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결국 무당파의 한계를 절감했다.

하지만 반 총장 측 인사는 “섣불리 어느 한 정당이나 정파와 손을 잡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지지층의 요구가 폭발하기를 기다렸다는 점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며 “특히 보수층이나 중도층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반 총장을 추대하는 분위기가 무르익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여름 이후 뉴욕에서 반 총장과 세 차례 만났다는 박진 전 의원도 “반 총장이 귀국 후 기존 정당에 입당해 활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귀국 후 국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 진영은 국내정치 세력과 ‘연대할 경우 가장 큰 정치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대상’으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를 꼽고 있다고 한다. 반 총장 측 인사들 사이에선 “개헌을 고리로 반 총장과 김 전 대표가 교감을 갖고 간접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반 총장 측에선 “민주당 대표를 지낸 상징성도 있고, 최대 10명 정도의 의원이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전 대표와의 연대는 대선구도를 흔드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오른쪽)와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김 전 대표는 개헌을 통해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한 대통령이 2020년까지 이끌고, 이후 21대 국회에서부터는 내각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총장이 최근 뉴욕을 방문한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 등에게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며 (대통령 임기도) 유연하게 맞춰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 걸 두고 ‘개헌과 대통령 임기 단축’에 적극적인 김 전 대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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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총장 측의 말을 종합하면 귀국 뒤의 행보는 ‘국민 여론 경청→김종인 전 대표와의 연대 및 지지세 결집→독자 정치결사체 구성→개혁보수신당 등 제3지대 세력들과 추대 또는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 단일화 시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반 총장은 귀국 직후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적절한 시점에 기존 정당 조직과 손을 잡으려 할 것”이라며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느냐와 정당과 손잡는 타이밍이 변수”라고 말했다.

서승욱·정효식 기자 sswook@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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