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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백 있기에, 평창서도 ‘벌떼 하키’ 반란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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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스타가 한국 감독을 맡게 된 이유는 뭔가?”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기적 비결
‘몽키’ 놀림 이겨내고 NHL서 활약
아버지 “일본 이겨야 한다” 유언
NHL 제의 거절하고 모국행 택해
‘전원 공격’ 유로챌린지 깜짝 우승
“평창 8강 해낼 수 있다” 자신감

최근 방한한 미국 NBC의 기자는 캐나다 동포 백지선(49·영어명 짐 팩)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겨울 올림픽 전체 입장수입의 50%가 아이스하키 한 종목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국내에는 프로팀은커녕 실업팀 3개 만이 있을 뿐이다. 성인 선수라야 133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력은 ‘동네북’ 수준이었다. 세계랭킹 23위인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얻었다. 조별리그 A조에서 만날 상대가 캐나다(1위), 체코(6위), 스위스(7위) 등 아이스하키 강국이다. 지난해 5월 조 편성이 발표되자 국내 아이스하키 계에선 “한국이 캐나다에 0-20으로 지는 망신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 아이스하키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달 유로챌린지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연파하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1982년 0-25 참패를 시작으로 일본전 1무19패에 그쳤던 한국은 지난 4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3-0으로 첫 승리를 거뒀다. 2014년 7월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백지선 감독이 이뤄낸 마법이다.

지난 21일 중앙일보와 만난 백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갔다. 2014년 돌아가신 아버지(백봉현씨)가 ‘넌 한국인이다. 일본을 꼭 이겨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NHL의 제안를 거절하고 모국으로 돌아왔다”며 “한국이 일본을 처음으로 이긴 4월26일은 바로 아버지 생일이었다. 아버지에게 값진 선물을 드린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백인 친구들은 그를 “몽키(원숭이)”라고 놀리며 침을 뱉었다. 이를 악문 백 감독은 “체력을 키우기 위해 수없이 언덕을 뛰어올랐다. 풋볼 선수들이 몸싸움 능력을 키우기 위해 차를 뒤에서 미는 훈련을 한다기에 따라한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백 감독은 1991년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NHL 무대를 밟았다.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데뷔했다. 데뷔 첫 해인 91년과 이듬해인 92년 스탠리컵(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는 기쁨도 맛봤다. 2003년 은퇴 후엔 캐나다의 올림픽 2연패를 이끈 마이크 뱁콕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팀당 6명이 나서는 아이스하키는 20분씩 3피리어드로 구성된다. 골리를 제외한 5명이 서너 개조를 이뤄 돌아가며 링크에 나선다. 경기가 워낙 격렬해서 선수들은 48~50초를 뛰고나면 바뀐다. 백 감독은 “아이스하키 감독은 퍼즐을 맞춰야 한다. 엔트리 22명을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 감독의 전략은 선수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는 ‘벌떼 하키’다. 디펜스 존-뉴트럴 존-어택킹 존 등 모든 구역에서 5명 전원이 플레이에 가담하는 5-5-5 전략이다. 대표팀 공격수 신상훈(23·한라)의 키는 1m71㎝에 불과하다. 백 감독은 “선수들 체격은 작지만 우리 팀은 ‘빅(Big)’ 플레이를 펼친다. 요즘 하키는 힘보다 스피드와 기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 감독 부임 이후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정장을 입고 이동한다. 그는 “대표팀 선수들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으면 보기 좋은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자긍심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에는 우수인재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으로 변신한 외국인 출신 선수 6명이 뛰고 있다. 귀화선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백 감독은 “캐나다 출신 브락 라던스키(33)는 9년째 한국팀 안양 한라에서 뛰면서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은 귀화선수 8명을 뽑았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개최국 이탈리아는 캐나다와 미국 출신 선수 11명을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정몽원(61)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내년 2월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4월 월드챔피언십 진출에 이어 평창 올림픽 8강 진입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의 현재 실력으로 보면 과도한 기대로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백 감독은 “그레이트(great)”라고 대답했다. 그는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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