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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도로 아프리카 노예 거래했던 흑역사의 흔적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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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6면

1 아프리카 내륙에서 사냥해온 노예를 일시 ‘보관’했던 탄자니아 바가모요는 대표적인 ‘노예 루트’ 도시다. 사진은 고대 페르시아 시라즈인이 아프리카에 이주해서 만든 바가모요 코올레 촌락의 건축 잔해.

언제나 ‘마지막’은 후련하면서 섭섭하기도 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바닷가로 해양 실크로드 탐사에 들어가면서 그런 이중적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탐사는 여유를 길게 갖고 무작정 오지로 들어가기로 했다. 탄자니아 인도양 출구인 다르에스살람에 당도해 여장을 풀자마자 바가모요로 향했다. 열악한 도로 사정, 헐벗은 주택, 그렇지만 살려고 애쓰는 이 땅 사람들의 아우성치는 생존의 노력을 쭉 지켜보면서 차는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바가모요에 도착했다.


해양 실크로드는 ‘스파이스(향료) 루트’이자 ‘세라믹(도자기) 루트’다. 그런데 동부 아프리카에 이르면 ‘노예 루트’가 추가된다. 인도양에서도 카펫·목재·철금속·보석·향료 등이 주요 무역 품목이었지만 노예만큼 ‘가격 경쟁력’ 높은 ‘물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부 아프리카 해양 실크로드 탐사가 본의 아니게 노예 루트가 된 것은 그만큼 인도양에서 노예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바가모요는 아프리카 내륙에서 사냥해온 노예를 일시 ‘보관’하던 항구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노예시장으로 내가기 전에 일시 ‘보관’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예시장 폐지는 유럽인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유럽인은 노예무역에 관해서 이중성을 띠게 된다. 아프리카 서부에서 엄청난 노예를 아메리카로 ‘수출’했다면, 동부의 사정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일찍이 아랍 노예장사꾼이 내륙에서 노예를 사냥했다. 노예는 몸바사·다르에스살람·바가모요 등지의 인도양 항구에 대기시켰다가 잔지바르로 이동시켰다. 잔지바르에서는 아랍·페르시아·인도 등지로 노예를 거래했다. 해양 실크로드의 흑역사다.

[보석·향료보다 가격 경쟁력 높아]
바가모요는 독일의 식민지였다. 독일식 교회와 수도원이 남아 있다. 박물관은 노예의 참상을 알림과 동시에 독일인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은 노예를 구출했고, 끝내 노예제도를 종식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선교사의 행동은 정당하고 축복받을 일이었으나, 이미 아랍인에게 장악되어온 노예시장경제를 와해하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여간 동부 아프리카 노예장사는 ‘공식적’으로는 종료됐다. 그런데도 그 후에 프랑스 노예상인이 동부 아프리카 식민지의 섬으로 노예를 끌고 가 플랜테이션에 종사케 한 것도 숨겨진 흑역사일 것이다.


바가모요 외곽의 카올레 마을을 찾아갔다. 스와힐리 해변 일대에 아랍권 영향력이 강한데 여기는 미리 정착한 고대 페르시아권역이다. 이란의 주요 실크로드 경유지로서 페르세폴리스 옆에 위치한 시라즈의 상인이 이 마을을 개척했다. 페르시아 상인이 한때 인도양을 장악했던 역사를 반영한다. 내륙 실크로드의 번성하던 상인들이 아프리카까지 무역로를 확장시킨 데서 고대 실크로드의 세계성이 확인된다.


노예시장의 본산을 찾아서 잔지바르로 향했다. 다르에스살람의 페리부두에서 불과 30분 만에 당도했다. 빠른 속도다. 나라는 빈곤하지만 페리 수준은 우리와 격이 다르다. 해양과 친숙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잔지바르는 분명 같은 탄자니아지만 여권 검사를 하고 스탬프를 찍는다. 잔지바르와 탕카니아를 합쳐서 탄자니아가 탄생됐기 때문에 한 지붕 두 가족이라고 할까.

2 잔지바르는 동부 아프리카 스와힐리문명의 발상지다.

잔지바르는 스와힐리 문명의 발상지다. 원주민은 아프리카계다. 무스카트에 본거지를 둔 오만은 세력을 확장해 아예 술탄의 본거지를 잔지바르로 옮겼다. 고색창연한 스톤타운 비좁은 골목에 아랍식 건축물이 빼곡하다. 무려 50개가 넘는 이슬람 모스크가 번성했으며, 인도인이 찾는 시바신전도 하나 있다. 페르시아 목욕탕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페르시아 상인의 흔적도 확인된다. 이렇게 온갖 언어와 피부색과 관습이 혼합돼 스와힐리 문명을 탄생시켰다.


스톤타운에는 영국 국교회가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본디 노예시장이던 장소다. 바가모요처럼 노예제를 폐지하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 교회당 중심에 동그랗게 표시된 지점이 하나 있는데, 노예가 상품으로 호출돼 만인에게 구매되기 위해 서 있던 포인트다. 앞마당에는 노예기념비가 을씨년스럽게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기념관 지하에는 당시 노예수용소가 위치한다. 여성과 아이, 남성으로 양분된 노예창고는 무려 50여 명씩 수용한 곳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좁고도 비참한 상황이다.

[노예기념비 을씨년스럽게 서있어]

3 잔지바르의 ‘노예창고’에 있는 사슬. [사진 주강현]

노예시장은 공식적으로는 1873년에 폐지됐다. 그러나 돈이 되는 최고의 장사를 노예상인이 쉽게 포기할 성질은 아니었다. 잔지바르 북서해안에는 비밀리에 운영되던 노예창고가 존재한다. 산호석을 뚫어 지하를 파고 지붕은 견고하게 산호콘크리트로 덮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심지어 자연 산호 동굴에 집단 수용했다가 해외로 수출했다. 많은 노예가 죽어갔으며, 험난한 악조건에서 살아남는 노예는 건강하다는 증표가 되어 비싼 값에 팔렸다.


노예는 외국으로만 팔려나갔던 것은 아니다. 많은 노예가 잔지바르 도시국가의 번성에 기여했다.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잔지바르의 우아한 도시경영을 떠받친 것도 노예노동이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는 코끼리 사냥에 동원되어 상아를 날랐다. 상아는 비싼 값에 세계로 팔려나갔다. 코끼리가 죽어가며 남긴 희생물에 인간은 높은 품격을 부여하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조각 공예를 선보였다. 상아가 배로 수출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해양 실크로드에 ‘상아의 바닷길’을 추가해도 좋을 것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한반도까지 상아가 흘러들어왔다. 태국, 인도의 상아도 있었겠지만, 개중에는 동부 아프리카 상아도 끼어있을 법하다.


잔지바르에서 북쪽으로 50km을 더 가면 있는 미지의 섬 펨바가 나온다. 10인승 프로펠러비행기를 타고 30분만에 닿았다. 펨바는 어쩌면 인도네시아 말루쿠처럼 지구 최대의 ‘향료의 섬’일 것이다.


잔지바르 자체도 향료의 섬이다. 그러나 잔지바르가 관광객이 모여드는 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완벽한 오지인 펨바는 향료만으로 살아간다. 당연히 향료농장에도 노예가 동원됐다.


펨바에도 바가모요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안 마을이 전해온다. 한때 이 섬을 잔혹하게 지배하던 폭군이 페르시안이었다. 웅장한 크기의 페르시안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서 찾아온 이방인에게 적대적이었다. 머나먼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에게 따스하게 대하던 풍습은 배를 이용하던 시절의 낭만이자 관습일는지도 모른다. 페르시안 마을의 흔적은 고대 이래로 페르시아 상인들이 펨바 섬에도 정착했다는 좋은 증거다.


마지막 여로에서 꼭 찾아가야 할 곳이 한 군데 있다. 모잠비크 국경으로 가는 바닷가에 있는 킬와다. 킬와는 낙후된 시골이다. 먼저 킬와의 키빈예 어촌을 찾아들어갔다. 거대한 돌창고가 즐비하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거대한 창고는 모두 노예수용소였다. 얼마나 많은 노예를 잡아들였기에 이 많은 창고가 필요했는지를 생각하며 키빈지 어촌을 빠져나왔다.

[탄자니아 킬와에서 대탐사 마침표]
킬와의 본 마을 선착장에서 보트를 전세냈다. 한 시간여를 달리자 송고 음나라 모래펄에 도착했다. 맹그로브 숲을 지나 20여분 걸어가자 거대한 폐허가 나왔다. 옛 스와힐리왕국의 성터다.


송고 음나라에서 배를 타고 20여분 가면 키시와니 섬에 당도한다. 여기도 거대한 성터가 존재한다. 역사적으로는 송고 음나라 것이 훨씬 오래되었다. 포르투갈 세력은 이들 해상세력의 본거지를 노렸다. 이곳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성을 세웠다. 그러나 원주민의 반격으로 결국에는 섬에서 쫓겨났다. 스와힐리의 해양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증거다.


킬와 유적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다. 워낙 오지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제대로 된 아프리카의 자연 그대로의 바다를 마주한 것이다. 스와힐리의 역사와 해양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두 섬을 탐사하는 것으로 해양 실크로드 탐사는 끝났다.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탄자니아 킬와의 섬에서 대탐사의 마침표를 마침내 찍는다. 그간 대항해에 동참해준 독자들에게 감사 드린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 해양문화연구원장asiabad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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