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학서 쫓겨난 ‘노래’ ‘귀로 듣는 시’로 돌아올 조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5호 26면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의 노래를 ‘귀로 듣는 시’라고 명명했다. 이 명명은 현대문학의 시스템에 대한 매우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근대 이후 시는 ‘귀로 듣는 노래’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눈으로 보는 시’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스웨덴 한림원은 근대 이후 100년 넘게 지탱된 ‘눈으로 보는 시’의 제도와 전통을 그렇게 쉽게 뒤집은 것일까? 중요한 것은 이번 수상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이 최고의 문학성에 주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스토리의 매력과 화제성도 무관하지 않았다. 1950년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1953년 정치가 윈스턴 처칠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 것처럼, 사회문화적인 맥락과 ‘휴먼 스토리’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에 고은 시인이 가장 근접했다고 하는 이유도 그의 탈속과 환속, 민주화 운동과 선(禪)적인 요소 등이 풍부한 스토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노벨 문학상은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경계에 서있는 작가에게 시선을 돌려왔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은 벨라루스의 언론인이자 르포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돌아갔다. 그의 작품을 문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근대 이후 ‘본격 문학’의 영역에서 논픽션과 사실적인 기록물은 배제되어 왔고 ‘상상적인 것’을 문학의 중요한 자질로 생각해왔다.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은 원전 사고와 전쟁 등 인간이 만든 참상에 노출된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육성이 어떻게 문학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수상은 ‘목소리 소설’, ‘증언 문학’의 가능성을 다시 호명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적인 것들의 문학성 다시 환기]밥 딜런의 수상은 근대 이후의 문학의 전통에 어떤 균열을 가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을 둘러싼 규칙과 장르들은 근대 이후 확립된 것들이다. 근대 이전의 문학과 근대 이후 문학의 차이를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지만, 인쇄술의 발전에 따른 활자 문학의 도래가 물질적 토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의 문학은 구비문학 시대의 ‘말하기(telling)’의 장에서 ‘보여주기(showing)’의 장으로의 이동을 의미했다. 문학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거나 가창되지 않고, 인쇄물을 통해 ‘보는’ 것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는 노래와 결별했다. 근대 이전의 대부분의 시들은 가창을 전제로 한 것이거나, 외형적이고 정형적인 운율을 갖고 있었지만 현대시는 ‘음악적인 것’을 눈으로 읽는 언어들의 행간 사이에 깊숙하게 묻어 놓았다. 밥 딜런의 수상은 근대 이후 추방되었던 청각적이고 음악적인 것, 그리고 가창을 통해 비로소 실현되는 문학성의 잃어버린 전통을 다시 환기시킨다.


밥 딜런은 반문화와 저항문화의 아이콘이었고, 포크 음악에서 로큰롤과 가스펠, 컨트리 음악 등으로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끊임없이 바꾸었다. 때로 상업성과 대중성을 배반하면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밥 딜런은 자신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언제나 탈주하는 존재였다. 그의 노래 ‘바람이 부르는 노래(Blowing in the wind)’에서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까’라고 노래하고, ‘구르는 돌멩이처럼(Like a Rolling Stone)’ ‘집 없는 신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돌멩이 같은’이라고 노래할 때, 그것은 그의 음악적 지향의 은유였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All I Really Want to Do)’에서 ‘당신을 단순화시키고 분류하고’ 싶지 않다고 노래한 것은, 특정한 호명과 영역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려는 성향을 암시한다. 그를 정의로운 영웅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지만, 자서전에서 그는 시대의 역할을 해달라고 몰려드는 반전 시위대와 히피들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준비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영웅답지 않은 영웅이었으며 1970년대 이후 그는 정치적 연대로부터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섰다. 만약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거부했다면, 거의 유랑의 신화는 보다 완벽한 것이 되었겠지만, 그의 수상 수락 역시 그의 ‘변신’의 일부로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정말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다.

2004년 발매 된 밥 딜런 자서전 표지. 그가 직접 타이프를 치며 쓴 책이다.[중앙포토]

밥 딜런의 수상에 대해 비판적인 논리 중의 하나는, 밥 딜런의 가사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이 아니며, 그것이 ‘노래’로서 불려질 때 대중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자) 문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적인 가수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헌납함으로써 노벨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확보했겠지만, 근대 이후의 문학의 전통을 ‘음유 시인’의 시대로 되돌리는 시대착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밥 딜런의 가사는 공연 현장에서 그가 내뱉는 무심한 듯 메마른 목소리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그는 공연 현장에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노래하곤 했으며 곡조와 박자를 무시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공연예술(performing arts)의 본질은 퍼포먼스 그 자체의 구체적인 현장성과 일회성이다. 문학이 퍼포먼스가 아니라 책 속에서 활자로 실현된 근대 이후의 문학 시스템에서 보면, 이러한 비판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학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과 개념으로 유지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문학의 길고 긴 역사는, 문학인 것이 문학 아닌 것이 되고, 문학 아니었던 것이 문학이 되는 역사였다. 밥 딜런의 수상을 단순한 시대착오가 아니라 근대 이후의 문학 시스템의 균열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앞으로 문학이 단순히 읽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문학이 더 이상 종이책 속에 거주하지 않는다면?


밥 딜런의 예기치 않은 수상이 한국문학에 가져올 수 있는 기대 효과 중의 하나는 노벨 문학상에 대한 갈망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계기에 관한 것이다. 노벨 문학상의 인준을 받지 못한 한국문학은 세계 문학의 수준에 편입되지 못했다는,오래된 콤플렉스는 한국문학을 짓눌러 왔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한국문학의 문학적 수준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어 문학’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사이즈의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 세계문학의 편입을 위해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은 번역의 문제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작가가 자신이 속한 국가를 대표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 문학’적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심지어 밥 딜런도 ‘받아버린’ 노벨 문학상을 한국 문학이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그렇게 가슴아파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문학은 노벨 문학상의 ‘내 것이 될 수 없는’ 권위의 뼈아픈 마법으로부터 풀려날 필요가 있다.


[청년문화 상징하는 ‘한국판 밥 딜런’ 김민기]밥 딜런이 1960년대 미국의 청년문화를 상징한다면, 70년대 한국의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인물 중의 하나는 김민기일 것이다. 70~80년대의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 한국 포크음악이 가지고 있던 저항적인 뉘앙스는 희미한 전율의 기억이었다. 전투경찰에 의해 곧 끌려가게 될 그 순간, 스크럼을 짜고 부르는 ‘아침이슬’은 마치 한 시대의 주술처럼 몸에 새겨져 있다. 한때 금지곡이기도 했던 이 노래의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같은 문장들은 한 시대의 또렷한 인장과도 같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친구’)와 같은 언어들은 김민기의 처연한 저음에 의해 비로소 소리의 질감을 부여받지만, 가사 그 자체로도 시적이다. 그의 언어가 고은의 시를 김민기가 작곡한 ‘가을편지’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에 비해, 그리고 밥 딜런의 영어 가사에 비해 ‘저급’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미발표작이었던 ‘I’m Not There’를 제목으로 한 토드 헤인즈의 영화에는 여러 명의 전혀 다른 캐릭터가 밥 딜런을 연기한다. 밥 딜런의 가사들이 많은 경우 ‘은유의 천국’에 속해 있다면 ‘I’m Not There’를 시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는 때로 문학의 장소에 있지 않고, ‘다른 장소’를 향해 움직인다. 제도로서의 시라는 장르는 시집과 문단과 출판시장과 학교라는 제도적인 영역에서만 성립되지만, ‘시적인 것’은 도처에 존재한다. 밥 딜런에게 시적인 것은, 1961년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성지였던 그리니치빌리지에 처음 정착하던 그 시절,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기 기타를 들고 나와 순수 포크 뮤지션들을 경악시켰던 그 순간, 혹은 1988년부터 그가 시작한 ‘네버 엔딩 투어’를 비롯한 수천 번의 공연, 순간인 동시에 무한인 그 시간 속에서 이미 실현되었다. 지금 여기에서라면, 이를테면 지하 카페의 소박한 낭송회의 어두운 조명 아래,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는 가난한 버스커의 낡은 기타 케이스 위에, 혹은 광장에서 한꺼번에 흔들리는 수만 개의 촛불들 사이로.


이광호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