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권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박근혜 정권의 성공”

중앙선데이

입력 2016.08.1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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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8 면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13일 세월호 사건(2014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KBS 보도를 통제했다는 논란에 대해 “정부 사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협조요청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경빈 기자

13일 낮 12시 김포공항 도착장 출구가 열리자 회색 점퍼 차림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걸어 나왔다. 이 대표는 전날 이명박(MB) 전 대통령에게 당선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 순천에 내려갔다가 이날 돌아왔다. 이 대표는 일반 승객들과 함께 출구를 빠져나왔다. 옷차림도 전당대회(9일) 전 전국을 돌며 유세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역구에 내려가는 건 당 대표 자격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다녀왔어요. 지역에선 철저한 심부름꾼이잖아요.” 이 대표는 공항 근처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면서도 정치인의 권위주의를 깨야 한다고 연신 강조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필요한 절차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오늘도 내가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을 공항 측이 알고 직원이 2명 나왔는데 내가 ‘다신 그러지 말라’ ‘직무상 필요한 일이 있을 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이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표 당선 이후 개별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집권당 대표에 대한 예우까지 정색하고 거절할 필요가 있나. “나는 정치권에 만연해 있는 권위주의가 싫다.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당 대표가 됐다고 갑자기 대단히 높은 자리에 오른 것처럼 예우와 의전부터 달라지는데 그런 게 싫다. 의전이라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도 있다. 권위적인 생활이 몸에 배지 않도록 사전에 멀리하려는 거다.”


-정치권의 권위주의를 깨기 위한 방법은. “국회가 개혁특별위원회나 정치발전특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자체적인 쇄신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셀프 개혁’을 한다면서 기득권과 특권을 활용해 자신들의 무능함을 보호해 왔다. 국회가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이를 계속 숨겨 오면서 70년 가까이 유지돼 왔다. 전문가도 언론도 국회와 함께 생활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국회 70주년(2018년)이 되기 전에 일반인이 국회를 1년간 깊숙한 곳에서 지켜보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한다. 지역구 관리, 의원 외교, 법안 처리, 관행, 시스템 등을 국민의 눈으로 보게 하자는 거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고쳐질 수 있고, 필요 없는 곳에선 권위가 사라지고 꼭 필요한 권위는 보강될 것이다. 당 대표로서 ‘국회 70년 총정리 국민위원회’를 구성하려는 이유다.”


-여론은 당장 새 대표체제에서 새누리당 계파 청산이 가능할지 주목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어느 당에서나 어느 조직에서나 계파 간 크고 작은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거기에 대표로서 싸움에 끼어들어 ‘이게 콩이냐 팥이냐’ 하고 싶지는 않다. 언론도 끊임없이 계파 문제를 제기하는데 내가 거기에 발을 들여놓고 휩쓸리기는 싫다. 당에 필요한 사람은 비주류 인사라도 받아들일 것이고, 똑똑한 사람인데 주류라는 이유로 또는 친박이라는 이유로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엉터리다. 나는 이런 식으로 당을 한번 바꿔 보고 싶다.”


-그동안 계파 청산과 관련된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대표인 나 스스로 계파라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다. 능력을 중심으로 민생을 챙기는 일을 하려는데 친박·비박 구분이 왜 필요한가. 정책에 대한 찬반론을 다투다가 서로 토라질 수 있는 것이고, 그건 바람직한 거다. 이런 일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언론은 계파 갈등에만 주목하는 건가. 현재 지방 ‘민생투어’ 중인 김무성 전 대표가 하시는 친박계를 겨냥한 공격적인 말씀도 언론이 상당 부분 유도한 것이라고 본다. 이번 전대가 끝나고 나는 김 전 대표께 너무 유쾌하게 전화를 드렸고, 당을 정말 잘 꾸려 가는 데 힘을 합치기로 했다.”


-4·13 총선 패배의 이유를 뭐라고 보나. “국민한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근본적인 진단을 이제 해 보려 한다. 어느 한두 가지 문제만으로 국민이 판단한 건 아닐 것이다. 당내 계파를 포함해 청와대와의 관계 등 주요 이슈들을 큰 틀에서 종합적으로 진단하겠다. 다만 당 대표인 나를 비롯한 당내 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외부의 전문기관에 맡겨 보고 싶다.”


-이른바 ‘비박계 공천 학살’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진단에 동의하나. “자꾸 그렇게 갈등을 부추기면 안 된다.”


-유승민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기자에겐 물어볼 권리가 있고, 나에겐 답변을 안 할 권리가 있다. (새누리당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사람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 어느 한 부분만 집중 진단해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향후 정권 재창출에 어떤 기여를 할지 주목받게 됐다. 지난 10일 (이 대표가) “대선 관리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선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선거는 목표만 갖고 있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현 정권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국민이 차기 대선에서 판단을 달리할 수 있다. 그래서 현 정부가 성공하도록 만드는 게 최우선이란 뜻에서 한 말이다. 우리 당 전체가 힘을 합해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켜 집권했다. 정부와 여당은 책임 공동체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5년 중 1년6개월이나 남았다. 이 정권이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재집권의 기반이 튼튼해진다. 따라서 다음 대선 후보를 도와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정권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를 신임 당 대표의 재집권 플랜이라고 이해해도 되나. “다음 대선 후보를 정해 당선시키는 일도 물론 함께 진행해야 한다. 내 입장은 지금 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6~7명의 희망자가 다 전면에 나서라는 것이다. 외부에 계신 분도 대선에 뜻이 있다면 우리 당으로 들어오라고 얘기하고 싶다. 단지 개방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입까지 할 것이다. 그것도 여러 분을 모셔 올 것이다. 그런 뒤 3~5개월 동안 치열한 정책토론을 벌이게 하고, 이후 여론조사를 통해 일주일에 한 명씩 떨어뜨리는 ‘슈퍼스타K’ 방식을 통해 후보군을 좁힐 것이다. 최종 2~3명의 후보를 추려 전당대회에서 마지막 승부를 겨루도록 하겠다. 요즘 시대에 가장 맞는 치열한 공개경쟁 방식이다. 사람뿐 아니라 공약도 치열한 토론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공약을 충분히 알고 당선자를 고를 수 있도록 하겠다.”


-대선후보 토론에는 개헌 이슈도 포함되나. “당연하다. 개헌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5년 단임제라도 아쉬운 대로 우리 국민이 수용하기로 한 것 아닌가. 민주화 이후 4년 중임제로 진작 바뀌었어야 했는데 정작 개헌을 주장하던 분들이 자기가 대통령을 맡으면 관심을 접었다. 이렇다 보니 30년 가까이 논의만 해 오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적합하다고 본다. 감사원을 입법부 기관으로 옮겨 오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개헌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이익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반영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차기 대선주자들이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워 줬으면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선 경쟁구도에서 유리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전혀 내 의도도 아니고 생각하는 바도 아니다. 말하는 것도 자유고 추측도 자유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보고만 있다. 어떤 대선 후보에게 어떤 흠결이나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최말단 당 사무처 직원인 ‘간사 병(丙)’에서 시작해 3선 의원에 당 대표에 올랐다. 중간에 정치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나. “단 한 번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전남 곡성)에서 열린 선거 합동연설회를 보면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땐 김구 선생님과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전기를 읽은 뒤 산에 올라가 소를 풀어 놓고 연설 연습도 했다. 그렇게 큰 의지를 갖고 시작해 그런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12일 당 사무처 조회 때 “일만 하느라 가정은 거의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어느 정도로 무심했나. “잠잘 거 다 자면서 고시 수석으로 붙는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이렇게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가정을 잘 돌봤을 리 없다. 가족들과 식사하는 일이 거의 없어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정말 미안하지만 솔직히 우리 애들(1남1녀)이 나온 학교 이름도 잘 기억 못한다. 집친구(이 대표는 부인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민화(民畵)를 잘 그려 국전(國展) 입상도 했던 사람인데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아빠로서의 역할은 자랑할 수가 없고 내가 어디 가서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말하는 순간 목이 메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에게 축하를 받았을 텐데. “집친구는 그냥 ‘더 바빠지겠네’라고만 하더라, 하하. 정작 가족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인 이정현의 미래는 무엇인가. 3선 의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당 대표까지 했는데 이제 대통령을 꿈꿀 것도 같은데. “이제 세속적인 목표는 다 달성했다. 당 대표까지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어떤 자리에 올라 보겠다고 정치를 해 온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비주류·비엘리트들을 대변하면서 그들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한다면 내 정치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것이다.”


최선욱기자, 이우연 인턴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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