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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활용한 조사 시간·비용 확 줄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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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호 12면

빅데이터를 활용해 통계 생산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은 유경준(55) 통계청장의 얘기다. 그는 30여 년간 노동 분야에서 한우물만 파온 노동경제전문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노동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동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을 거쳐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를 지냈다. KDI에서 함께 근무한 김동석 KDI 부원장은 “유 청장은 오랫동안 통계를 이용해 노동정책을 연구했기 때문에 수요자 입장에서 통계의 활용방안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통계 수요자에서 공급자로 바뀐 유경준 청장이 지난 1년간 주목한 것은 빅데이터다. 지난해 10월 통계정보국을 통계데이터허브국으로 확대 개편하고 이곳에 빅데이터통계과를 신설했다. 그는 “공식통계는 전수조사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시의성이 떨어진다”며 “이와 달리 빅데이터 통계분석은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기존 데이터를 재가공하기 때문에 수요자가 원하는 맞춤형 통계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 통계분석이 성과를 거둔 것은 지난해 11월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였다. 유 청장은 전체 가구를 일일이 조사하는 대신 행정자료를 활용해 표본가구만 조사하는 ‘등록센서스’ 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13개 행정기관에서 수집한 주민등록부, 건축물 대장 등을 통해 인구의 기본 사항을 파악하고, 자료로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은 통계청이 별도로 조사해 합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예산이 1455억원 줄었다. 유 청장은 이달 7일 시작하는 경제총조사에도 빅데이터를 이용할 예정이다.


-경제총조사란 뭔가.“한국 전체 산업의 규모와 특성을 5년마다 통일된 기준으로 파악해 경제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약 450만 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약 한 달간 인터넷과 전화·방문면접 조사를 한다. 이 중 42%는 국세청 등 행정기관의 자료를 활용해 조사 항목을 줄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자영업자와 중소·영세기업 통계를 강화한다. 사업장 없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업자와 퇴직 후 치킨집을 차리는 자영업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서다. 자영업의 탄생부터 성장, 소멸까지 사업구조를 통계로 분석하면 앞으로 반퇴자의 창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주민등록번호처럼 기업등록부(BR· Business Register)를 만들겠다. 상당수 선진국은 이미 BR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는 아예 BR을 등록하고 운영하는 관리센터가 있다. 한국은 호주처럼 통계청과 국세청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세청의 사업자등록 자료를 활용해 기업 실적, 종사자 수 등을 파악하고 사업자등록을 신청하지 않은 곳은 통계청에서 조사하는 방식이다.”


-어떤 효과가 있나.“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빈틈없는 경제지도를 그릴 수 있다. 또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올해 행정기관의 기존 자료를 이용하면서 5년 전보다 100억원 이상 예산(680억원)이 줄었다. BR이 구축된 후엔 300억원 이상 예산을 절감하고 매년 통계지표도 발표할 수 있다.”


유 청장은 빅데이터 활용 방안을 넓히기 위해 행정기관뿐 아니라 민간 업체와도 적극적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네이버·여신금융협회·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 6곳과 손잡고 기존에 제공하지 못했던 새로운 통계를 뽑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개인신용평가사인 KCB와 함께 분석한 ‘신혼부부 부채 통계(민간 및 공공 빅데이터를 연계한 신혼부부 DB)’가 이달에 나올 예정이다. 결혼 1~5년차 신혼부부의 최근 5년간 부채 규모를 분석한 자료다. 국내엔 처음 공개되는 통계다. 유 청장은 “신혼부부의 빚 부담이 출산율에도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해 저출산과 가계부채 대책 마련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를 줄이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달 말 선보일 ‘나의 체감 물가 서비스’가 대표적인 고객 맞춤형 통계지표다. 소비자가 주로 쓰는 품목 위주로 자신만의 물가를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없어 휘발유 지출이 없다면 휘발유는 물가 항목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요즘 유 청장은 통계청의 역할에도 고심이 많다. 그는 “국민 경제와 정부 정책에 필요한 통계를 생산·관리하는 곳이 통계청”이라며 “통계의 가장 기본인 국내총생산(GDP) 같은 국민계정 통계 작성은 한국은행이 아닌 통계청에서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계정은 국가의 구성원이 일정 기간 이뤄낸 경제 성과와 국민경제 전체의 자산과 부채 상황을 정리해 보여준다. 나라의 재무제표인 셈이다. 유 청장은 “통계청이 없을 때 미 군정이 한국은행에 국민계정을 맡긴 게 60년 넘게 이어졌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중앙은행이 국민계정을 산출하는 나라는 한국과 칠레·벨기에뿐”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이 맡아야 하는 이유는.“현재는 이중 구조로 예산과 인력 운영이 비효율적이다. 국민계정은 한은이 산출하지만 그에 필요한 기초 통계는 통계청에서 제공한다. 또 일정 기간 시·도 단위의 총생산액을 추계하는 지역내총생산(GRDP)도 통계청에서 산출한다. 통계 전문기관인 통계청이 기초 지표 산출을 맡고 한은의 고급 인력은 이를 분석해 더 가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면 해결될 문제다.”


-통계청은 독립성 논란도 있는데.“독립성 문제는 지난 정부의 일이다. 통계청이 국가통계를 발표하기 전에 정부 부처에 미리 자료를 넘긴 게 문제가 됐다. 하지만 이번 정부 출범 후 지난 3년간 이런 지적을 받은 적이 없다. 또 통계법 개정안이 올해 7월부터 시행돼 통계청의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된다. 개정안엔 통계 작성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막고, 통계 공표 전 부처 간 사전 협의를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유 청장은 “우선 만나서 각자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한은이)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서 고민”이라며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통계청의 미래를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염지현 기자 yeom.jihyeo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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